내마음의 수필

칼 퇴근 하니 가족들이 하는말 "어디 아픈 거야?"

행복한 까시 2009. 9. 19. 08:03

 

 “칼 퇴근”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까지 직장인의 영원한 꿈이 바로 칼 퇴근이다. 퇴근 시각에 맞춰 퇴근한 것이 언제였던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써 기억을 하려고 머리를 굴려 보지만 머리 속에는 텅 빈 공간만이 남아 있다. 하긴 일년에 한두 번 칼 퇴근을 하니 기억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칼 퇴근을 하였다. 치과에 가기 위해 칼 퇴근을 한 것이다. 교정을 진행하는데 약간의 트러블이 생겨서 검진 받으러 가는 것이다. 이렇게 아주 급한 일이 있어야 칼 퇴근이 가능한 것이다. 보통 회사에서 칼 퇴근을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일이 아주 많아서 못하는 경우이다. 나머지 한 가지는 회사에서 남아 있으라고 눈치를 주기 때문에 퇴근을 못하는 것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경우는 두 가지가 모두 해당된다.    


 퇴근을 하는데 태양이 머리위에 있었다. 밝은 낮에 퇴근하는 느낌이다. 왠지 어색하기만 하다. 퇴근은 캄캄한 밤중에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안에 있는 생체 시계들이 적응을 못하는 것 같다. 뇌도 그렇고, 모든 육체의 감각들도 익숙하지 않은 퇴근 시간을 어색하게 감지하고 있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회사에서 모든 고민은 던져버리고 퇴근을 하니 기분이 좋은 것이다. 도로에 차량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참 칼 퇴근 하는 사람들도 많다. 부럽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매일 밤늦도록 야근 하니까 남들도 야근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차피 우리 일상은 내 중심대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내가 힘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힘든 것 같고, 내가 즐거우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즐거운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집에 도착한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은딸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건넨다.

  “아빠, 왜 일찍 들어 왔어?”


 옆에 있던 아내도 한마디 거든다. 

 “당신 웬일이야. 무슨 일 있어?  어디 아픈 거야?”


 이쯤 되면 일찍 퇴근한 이유를 해명해야 한다. 일찍 들어온 날이 거의 없으니 가족들이 일찍 들어온 이유가 궁금해서 질문 공세를 해 댄다.

 “아니 치과에 갔다 오느라고 일찍 퇴근한 거야.”

         

 옷도 벗기 전에 딸들의 요구사항이 빗발친다. 아빠가 오랜만에 일찍 들어오니 주문하는 것이 많다. 큰 딸의 주문이 쏟아진다.

 “아빠, 오목 한판 둘래요. 오목 두고 알까기도 해야 돼요. 그리고 참 학교에서 숙제 낸 것 있는데 좀 도와주세요.”  


 작은딸도 이에 질세라 요구 사항이 줄을 잇는다.

  “아빠, 책 읽어 주세요. 그리고 산수 문제 모르는 게 있어요. 가르쳐 주세요. 그리고 학교에서 만들기 숙제 낸 것 있는데 좀 도와주세요.”

 

  아이들의 요구 사항을 다 들어 주려면 아마도 밤을 새야 할 것 같다.


 밥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다. 아이들이 옆에 앉아서 재잘거린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 집에서 엄마에게 혼난 일들, 그리고 엄마가 잘 못한 일을 고해바친다. 그동안 아빠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줄줄 나온다. 그래도 아빠라고 이야기 해주는 딸들이 고맙기만 하다. 그래도 평소에 딸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았나 보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미안해진다. 회사일 한다는 핑계로 가족들에게 소홀한 것이 사실이다. 매일 늦게 퇴근을 하니 일찍 들어가면 가족들이 놀라는 것이다. 그래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왜 일찍 왔냐고 묻는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부터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요구사항을 늘어놓는 것도 사랑을 달라는 애정 표현의 방식이다. 가끔은 일찍 퇴근해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딸들에게도 좀더 많은 애정 표현을 해주어 딸들의 애정 갈증을 풀어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