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봉숭아를 키우던 화분이 있었다. 올해는 봉숭아를 심지 않고 베란다에 방치해 두었다. 여름 내내 흙만 채워진 빈 화분은 베란다에 흉물스럽게 버려져 있었다. 대신 다른 화분 두개에서는 채송화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하나는 큰딸이 키우고, 하나는 작은 딸이 키우고 있다. 작은딸은 채송화 화분에 열심히 물을 준다. 자기 몫으로 할당을 주니 열심히 물을 주는 것 같다.
9월 초쯤으로 기억된다. 작은 딸이 채송화에 물을 주다가 심심해서 그랬는지 빈 화분에 물을 주었다. 그랬더니 며칠 지나서 작은딸이 호들갑을 떨며 소리쳤다.
“아빠 화분에 싹이 났어요.”
싹을 자세히 보니 봉숭아였다.
“야, 이건 봉숭아다. 그동안 수분이 없어서 싹을 틔우지 못했는데 물을 주니 싹이 난 것 같구나.”
“그런데 이제 나면 언제 꽃을 피우니?”
늦게 싹을 틔운 봉숭아가 안쓰러워서 이렇게 말을 했다.
작은 딸은 봉숭아가 자라는 것이 재미있었는지 열심히 물을 주고 키웠다. 계절을 지나서 나온 싹이라 더디게 자라났다. 역시 식물은 봄에 태어나야 여름을 지나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 같다. 가을이라 기온이 낮아 자라는 속도가 느렸다. 가끔 그 봉숭아를 보면서 꽃도 못 피울 운명이라고 안타깝게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봉숭아에서 꽃봉오리가 생겨났다. 정말 신기했다. 그 작은 봉숭아에서 꽃이 핀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순간 내가 봉숭아에게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봉숭아도 나름대로 제 살 궁리는 다하고 사는 것이었다. 겨울이 오려고 하니 빨리 꽃을 피우는 것이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종족을 보존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 자신만 약은 것처럼 행동했는데 봉숭아는 나보다 더 약아빠진 것이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식물도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의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식물은 움직이지 못하고 소리로서 의사표시를 못할 뿐이지 다 같은 생명체임에는 틀림이 없다. 식물을 대상으로 실험한 연구 결과에서 보듯이 사랑을 많이 주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고, 계속 좋은 말을 해주면 식물들이 예쁘게 자라며 성장속도도 빠르다고 보고 되고 있다. 반대로 학대를 하거나 시끄러운 음악을 들려주고, 나쁜 말을 반복적으로 하면 식물의 성장에 방해를 받거나 심지어는 죽기까지 한다고 한다. 이런 실험 결과를 종합해 볼 때 식물도 동물처럼 인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말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이라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 집에는 화분을 몇 개 키우고 있다. 주로 키우는 것이 군자란이다. 작년에는 봉숭아를 키웠고, 올해는 채송화를 키우고 있다. 가끔 아침에 일어나 부쩍 자란 화초들을 보고 기쁨을 얻는다. 베란다에 푸른빛을 띤 식물과 빨간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도 일상의 작은 행복을 얻는 한 가지 방법이다. 그리고 군자란이 포기가 번식해서 한 포기가 두 포기가 될 때는 동물들이 새끼를 낳는 것만큼의 기쁨도 가져다준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봉숭아가 꽃망울을 터트렸다. 작은딸은 좋아서 난리가 났다. 자고 있는 나를 깨우며 말을 하였다.
“아빠, 봉숭아꽃이 피었어요. 빨리 와 보세요.”
딸의 성화에 베란다로 달려가 봉숭아를 보며 한마디 했다.
“정말이네, 그 놈 참 기특하기도 하네.”
내가 꽃을 못 피울 것이라고 걱정한 것에 대해 항변이라도 하듯이 꽃을 피워낸 것이다. 정말 약아빠진 봉숭아이다. 그래도 그 약아빠진 봉숭아가 밉지 않은 것은 봉숭아도 우리 가족의 일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작은 딸이 애지중지 하는 것이라 더 예쁜 것이다.
'내마음의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닭다리의 주인은 계속 바뀌어 간다. (0) | 2009.11.07 |
---|---|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 고단한 일이다. (0) | 2009.11.03 |
누가 내게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요? (0) | 2009.10.07 |
칼 퇴근 하니 가족들이 하는말 "어디 아픈 거야?" (0) | 2009.09.19 |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언제 느끼시나요?[릴레이:나이] (0) | 2009.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