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닭다리의 주인은 계속 바뀌어 간다.

행복한 까시 2009. 11. 7. 07:31

 

 어제는 후라이드 치킨을 주문했다. 큰딸아이는 요즘 크려고 하는지 무지하게 먹어댄다. 밥을 금방 먹고 나서도 배고프다고 먹을 것을 찾아다닌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집사람은 큰딸이 가장 좋아하는 후라이드 치킨을 주문시켰다.

 

  치킨이 도착하자 딸들은 정신없이 먹는다. 나도 한 점 먹는 시늉만하고 자리를 물러나 앉았다. 그리 먹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만약에 안 먹고 있으면 과거의 나처럼 우리 아빠는 닭고기를 싫어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닭고기 먹을 때 끼워주지도 않을까봐 먹는 척이라도 한 것이다. 닭다리부터 하나씩 들고 맛있게 먹고 있는 두 딸을 보고 있으려니 닭고기와 닭다리에 얽힌 사연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을 맴돌다 지나간다.

 

 아주 어렸을 때 할머니는 집에서 토종닭을 키웠다. 주로 옥수수나 잡곡을 먹여 키우고, 먹이가 모자라면 닭들은 벌레를 잡아먹거나 길가의 풀이나 풀씨를 뜯어 먹었다. 몇 마리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닭은 아주 귀한 가축이었다. 제사가 있거나 생일날 등 아주 특별한 날에 닭을 잡아서 먹었고, 닭이 낳는 계란도 함부로 먹지 못하고 장에 내다 팔았다.

 

 한번은 할머니께서 중학교에 다니는 큰형이 몸이 허약해진 것 같다고 하면서 닭을 잡아서 인삼을 넣고 삼계탕을 끓여 주셨다. 형은 집안의 장손이라 할머니에게는 아주 각별한 존재였다. 돌이 지나자마자 데리고 주무실 정도로 아주 애틋한 존재였다. 그 날도 저녁나절 잠깐 자고 일어나 보니 형에게만 삼계탕을 먹이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 나도 먹고 싶다고 떼를 썼다.

 “할머니 나도 닭고기 좀 줘 잉”

 “이건 약이란다. 너는 써서 못 먹는다. 나중에 따로 끓여주마”

하시며 먹지 못하게 말리셨다. 

 

못 먹게 하면 더 먹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 계속 떼를 쓰며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할머니께서 마지못해

 “둘째에게도 한 점 줘라”

하시면서 어머니께 말씀을 하셨다.

 

 한점을 입에 넣으니 인삼과 마늘이 많이 들어가서 무척 쓰고 매웠다. 입에 넣자마자 먹지도 못하고 그대로 뱉었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아깝다고 하시며 누나에게 먹으라고 강요를 하셨다. 그 순간 누나의 얼굴은 일그러지며 마지못해 그 닭고기를 먹었다. 아직도 상을 찡그리며 그 닭고기를 먹던 누나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어렸을 때 닭다리는 형의 몫이었다. 그런데 내가 커가면서는 닭다리의 주인은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넘어왔다. 왜냐하면 나는 고기를 별로 먹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서는 한점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 닭다리를 나에게 주셨다. 훗날 집에서 닭을 키우지 않고 통닭을 주문해서 먹을 때에도 닭다리는 항상 내가 먹을 수 있는 특혜가 있었다.

 

  줄곧 내차지였던 닭다리는 결혼을 하고 나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아내가 임신 초기에 닭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내가 고기를 별로 먹지 않으니까 남길까봐 닭 반 마리를 주문했다. 닭이 도착하여 나는 평소 하던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닭다리를 집어서 먹었다.

 

  아내도 닭다리를 먹고 싶었는데 달랑 내가 들고 먹으니 이것을 본 아내는 무척 서운한 감정이 들었나 보다. 임신 했을 때 섭섭한 감정은 평생을 간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를 기회만 되면 두고두고 한다. 처가에는 물론 본가에 가서도 몇 번 이야기하여 내 얼굴을 빨갛게 만들어 놓는다. 그 후로 우리 아내는 닭고기를 시킬 때 반 마리는 절대 시키지 않았다. 꼭 한 마리씩 시켰다. 이 사건 때문에 15년이 지난 요즘도 닭다리 이야기만 나오면 나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있다. 


 그래도 우리 딸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아내와 닭다리 하나씩 나누어 먹었기 때문에 닭다리 하나라도 내차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닭다리를 만져 볼 수도 없다. 아이들이 닭다리부터 잡고 뜯으니 말이다. 과거에 내가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닭다리를 뜯듯이 말이다. 멀찌감치 앉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보니 어느새 닭고기가 바닥이 났다. 딱 두 조각 남기고 다 먹어 버렸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나의 배에도 포만감이 오는 것 같다. 과거 부모님께서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표현을 이제야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