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가치가 추락한 천원짜리 지폐가 나를 슬프게한다.

행복한 까시 2009. 12. 20. 07:59

 

 초등학교 친구들이 포커를 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포커로 회포를 풀고 있다. 밤새도록 이어진 포커 게임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포커를 칠 줄 모르는 나는 새우잠을 자다가 일어나 그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다. 한 놈은 담배를 물고 패를 돌린다. 또 한 놈은 날이 더워서 그런지 웃통을 벗어젖히고 들어온 패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모두 게임에서 이기려고 하는 승부욕으로 가득 차 있다. 승자와 패자의 표정을 살펴보면 재미있다. 이겼을 때는 음흉한 미소가 얼굴을 뒤덮고, 게임에서 졌을 때는 패배의 쓴 맛이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배팅을 하는 바닥에는 천 원짜리가 수북이 쌓여 있다. 천 원짜리가 이제는 배팅의 기본 금액이 되어 버린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백 원짜리로 배팅을 했는데, 세월이 그 만큼 많이 흐른 것이다. 실물 경제에서 적용되는 인플레이션은 시장을 누비고 우리 생활 구석구석을 거쳐 포커 게임 판에 까지 온 것이다. 게임에서 이겼을 때 판돈의 크기에 따라 웃음도 달라진다. 판돈이 커져서 만 원짜리 지폐가 몇 장 섞이면 좋아하지만, 천 원짜리 지폐만 있으면 게임에서 이기고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요즘 나온 오만 원짜리 신권이라도 한 장 들어 있으면 월척을 낚은 것처럼 의기양양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친구들이 하는 포커 게임 판에서도 천 원짜리는 대접을 받지 못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천원은 쓸모가 많은 돈이었다. 천 원짜리 한 장 들고 나가면 과자도 몇 개 사고, 아이스크림도 사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거스름돈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달랑 과자 한 봉지, 아이스크림 한 개 정도, 버스나 지하철도 간신히 한 번 정도 탈 수 있는 금액이다. 천 원짜리가 이렇다 보니 그 밑에 있는 백 원짜리와 십 원짜리는 더 천시를 받는다. 아이들도 백 원짜리를 주면 잘 받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천 원짜리 지폐가 집에서 굴러다닌다. 어떤 때 보면 아이들의 책상위에도 떨어져 있다. 가끔 거실 바닥에서도 뒹굴 거리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넉넉해서 천 원짜리 지폐가 뒹구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천 원의 가치가 추락했다는 것이다. 지갑에서도 천 원짜리는 지갑만 불룩하게 만들뿐 그리 환영 받는 지폐는 아니다. 요즘 나온 오만 원짜리 지폐가 지갑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는 것 같다. 오만 원짜리 지폐를 흔히 볼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이 지갑 속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모양이다. 

 

  작은 딸이 귀고리를 사달라고 졸라서 문방구에 들렀다. 작은 딸과 함께 문방구에 가는데, 동네가 생소한 느낌이 든다. 집 앞에 있는 문방구인데, 거의 들러 본 적이 없다. 매일 새벽 같이 출근 하고, 밤늦게 퇴근 하다가 보니 동네가 그리 익숙하지 않다. 사는 동네에는 겨우 잠만 잘 뿐 낮에는 먼 곳에서 일을 하다가 보니 오히려 일하는 곳의 동네가 더 익숙한 것이다. 더구나 걸어서 집 밖에 있는 문방구를 가니 더욱 낯선 느낌이 드는 것이다.

 

  문방구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좋아할 물건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티커, 장식용 귀고리, 반지, 구슬, 그리고 작은 봉지로 포장된 과자들이 오밀조밀 진열되어 있다. 이곳에는 천원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제법 있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동전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많았는데, 문방구에서도 천원을 내밀면 별로 살 것이 없는 것이다. 조잡한 장난감 귀고리도 한 개에 오백 원에 팔고 있었다. 작은 딸은 동그란 모양의 보라색 한 개, 네모난 모양의 초록색 한 개의 귀고리를 집어 들었다. 천 원짜리 한 장으로 장난감 귀고리 두 세트를 살 수 있었다.

 

 귀고리는 몇 번 하지도 않아서 부러져 버렸다. 아무리 오백 원을 주고 산 것이지만 그렇게 쉽게 부서지는 것에 대해 마음은 그리 유쾌하지가 않다. 장난감 귀고리를 사들고 작은 딸이 행복해 했는데, 귀고리가 부서지자 그 작은 행복감도 부서져 버린 것이다. 이처럼 천원의 가치는 쉽게 부서지는 귀고리나 살 수 있는 그런 존재감이 별로 없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천 원짜리는 그런 것이다. 필요한 돈이면서 그 가치가 추락해서 점점 천덕꾸러기가 되어가는 것이다. 물론 천원이 열장 모이면 만원이 되고, 백장이 모이면 십만 원이 되는 것이다. 천원이 여러 장 모이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런데 천 원짜리 한 장은 그리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친구들이 벌이는 포커 판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은 작아 보였다. 그 천 원짜리에서 힘없고, 늙은 사람들의 작아진 모습을 본 듯했다. 쌀을 만들기 위해 방아를 찧으면 나오는 왕겨와 같은 신세가 된 것이다. 방아를 찧고 나서 쌀은 먹으려고 가져가지만 왕겨는 버리기는 아깝고 해서 거름이나 땔감으로 쓰려고 가져가는 것이다. 천 원짜리도 귀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거스름돈을 위해서 아니면 잔돈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서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가치가 추락해서 작아보이는 천 원짜리 지폐를 보면서 쓸쓸한 생각이 든다.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더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 마치 사람과 같다. 나이가 들수록 초라해지고, 작아지는 사람들의 모습과 비슷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이든 어른들을 무시하면 안 되는 것처럼 천 원짜리도 무시하면 안 된다. 작게 보이는 천원도 소중히 여겨야 큰돈도 잘 관리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