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거울을 보다가 늘어난 흰머리를 보고 충격 받았다.

행복한 까시 2010. 1. 26. 06:41

 세수를 하면 거울을 보게 된다. 습관처럼 거울을 본다. 요즘은 세면대에 거울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흰머리가 한 두 개씩 생겨났다. 한 두 개씩 생길 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전체가 검은 머리 인데 흰머리 한 두 개정도는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흰머리의 개수도 점점 늘어났다. 흰머리가 늘어가도 그리 보기 흉하지 않았다. 그런대로 봐줄 정도였다.

 

 오늘 세수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흰머리의 기세가 장난이 아니다. 검은 머리를 압도하려고 했다. 아직까지는 위험 수위는 아니지만 흰머리가 제법 티를 내고 있다. 아직 사십대 중반인데, 이렇게 흰머리가 많은 것은 충격 그 자체이다. 순간 겁이 더럭 났다. 갑자기 모든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생각만 해도 끔찍스럽다. 만약 머리가 하얗게 된다면 우리 딸들도 할아버지라고 놀릴 것이다.

 

 흰머리를 생각하다가 보니 예전의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도 그랬다. 그리 연세가 많지 않은 시절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어머니는 흰머리를 유난히 싫어하셨다. 매일 거울을 보면서 푸념을 하셨다.

  "아휴, 하얀 머리 꼴도 보기 싫구나. 창피해서 밖에도 못 나가겠다."

그러면 나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뭐 어때요. 그냥 편하게 다니세요. 엄마는 염색하면 부작용도 많잖아요."

 

 사실 그랬다. 어머니는 염색만 하면 부작용이 심했다. 머리가 다 헐어서 딱지가 앉았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염색을 하셨다. 중요한 결혼식이나 행사가 있으면 염색을 하셨다. 나중에는 가발까지 쓰셨다. 하얀 머리가 무척 싫으셨던 것이다. 어머니의 이런 노력도 내일이 아니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다. 어린 시절에 머리가 하얗게 센다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내심 걱정은 되었다. 어머니의 유전인자를 그대로 물려받아 머리카락 모양도 어머니와 비슷하다. 나도 머지않아 어머니 나이가 되면 어머니처럼 하얗게 머리가 센다는 것을 상상했었다. 그래도 그 당시는 아주 먼 훗날의 일이기 때문에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내 머리가 많이 센 것을 보니 충격이다. 어머니가 흰머리를 왜 이리 혐오스럽게 생각했는지 공감이 간다. 사람은 참 간사한 인간이다. 언젠가 드라마의 대사에서 들은 기억이 난다. '남이 아파 죽어도 내 발톱에 든 가시가 더 아픈 법이야.'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막상 나의 일이 되니 은근히 걱정이 되는 것이다. 나 또한 알레르기가 심해서 염색도 못한다. 그러니 그냥 흰머리를 자연스럽게 가지고 가야 한다.

 

 머리에 늘어난 흰머리를 보니 마음이 착잡하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아직 얼굴은 젊은 것 같은데, 이 얼굴에 흰머리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더 씁쓸하다. 아마도 머리가 조금 더 하얗게 변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늙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흰머리와 친구가 되어 남들 앞에서도 떳떳하게 행동하는 연습을 해 두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