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과일 먹어보지 않고 맛을 알 수 있는 이유

행복한 까시 2009. 11. 22. 13:55

 

 어릴 적부터 과일을 좋아했다. 집에 고기는 떨어져도 과일은 떨어지지 않는다. 가난했던 어린시절 과일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그것 이었다. 나중에 커서 가정을 꾸리면 맘껏 먹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집에 과일을 떨어뜨리지 않고 먹고 있다.


 사계절이 있어 일년 내내 과일 메뉴가 바뀐다. 그런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이다. 봄에는 딸기, 여름에는 수박, 참외, 복숭아, 가을에는 포도, 사과, 배, 겨울에는 귤이 있다. 과일을 바꿔서 먹다가 보면 일년이 가는 것이다.


 주말이 되면 아내와 장을 본다. 이것저것 과일을 산다. 사과, 감, 귤 등 겨울철에 흔한 것을 산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면 딸들은 시장 가방을 뒤진다. 가방에서 귤이 나오면 환호성을 지른다. 딸들은 귤을 좋아한다. 일단 하나 먹어 보고, 맛이 좋으면 계속해서 가져간다. 그리고 귤은 금세 바닥이 난다. 만일 맛이 없으면 다들 도망간다. 그 귤이 없어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와 아내가 오랫동안 먹어야 없어진다.


 아침을 먹고 사과를 깎는다. 깎아서 접시에 올려놓는다. 작은 딸이 포크로 찍어 먹는다. 사과에 손이 계속해서 가면 맛있는 것이다. 깎는 속도보다 먹는 속도가 빠르면 사과가 맛있는 것이다. 맛이 없는 사과라면 한번 먹고 다들 도망가 버린다. 맛이 별로인 사과를 혼자 먹는 것은 고문이다. 


 맛있는 과일은 먹는 속도가 빠르다. 과일의 맛은 없어지는 속도에 비례하는 것이다. 맛있는 과일은 빨리 없어진다. 맛없는 과일은 오래 남아서 집안에서 뒹군다. 맛이 없으면 아이들이 과일 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맛없는 과일이 접시에 올려져 있으면 한 입 베어 물고 다들 도망가 버린다. 작은 딸이 가장 먼저 도망가고, 다음으로 큰딸, 아내가 도망간다. 결국 제일 오래 남는 사람은 나다. 가끔은 나도 맛없는 과일 앞에 줄행랑을 치기도 한다. 


 과일은 맛이 있어야 한다. 가끔 농담으로 아내에게 이야기 한다.

 

  “과일 비싼 것은 용서해도, 과일 맛없는 것은 용서 할 수 없지.”

 

 하나를 먹어도 맛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요즘은 대부분의 과일이 맛이 있다. 맛이 없는 것을 팔리지도 않고, 제값을 받을 수도 없다. 과일의 가격도 중요하지만, 품질을 더 중요시 여긴다.


 아이들이 과일 먹는 모습을 보면 그 맛을 알 수 있다. 먹어 보지 않아도 과일 맛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무 말 하지 않고, 과일을 열심히 먹으면 과일이 맛이 좋은 것이다. 과일을 먹다가 살며시 도망가거나 말이 많아지면 맛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과일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하다. 아이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과일은 내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포만감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