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날이다. 10월의 마지막 날이면 어른들은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생각나고, 10대들은 할로윈 데이가 생각나는가 보다. 우리 큰딸은 할로윈 데이 축제에 간다고 난리다. 외국에서 들어온 축제나 기념일이 우리 생활 깊숙이 점점 파고들어 온다.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니 결혼의 추억이 생각난다. 아내와 나는 10월에 결혼을 하였다. 나는 시골에서 성장한 촌놈이고, 아내는 서울에서 성장한 서울 아가씨다. 결혼 하던 해의 10월의 날씨는 너무도 포근했다. 그리고 단풍도 곱게 들었다. 단풍이 곱게 든 고궁에서 웨딩 촬영도 하였다. 고궁에서 웨딩 촬영을 한 것도 분명 서울 아가씨인 아내 덕분이다.
아내를 처음 만난 건 지하철이었다. 지하철에서 아내를 처음 본 순간 필이 꽂힌 것이다. 아내는 그 때 같은 회사에 다녔는데, 내가 근무하는 같은 사업장으로 발령이 났다고 했다.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동료들이 인사를 시켜 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와 서서히 가까워져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런 것을 두고 인연이라고 하는가 보다.
처음 만났을 때 아내는 서울 깍쟁이였다. 아마도 시골 촌놈 눈에는 서울 아가씨가 멋져 보였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필이 꽂힌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다른데 있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내가 없더라도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내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이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 때는 종족 보존에 대한 본능이 사랑보다 앞섰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를 비롯한 많은 여자들이 사랑해서 결혼 했다는 말을 듣고 싶을 것이다.
결혼 전 아내는 보통의 서울 아가씨처럼 같았다. 세련되고, 우아하고, 화려한 것 무진장 좋아한다. 앙드레김 선생님이 입만 열면 말씀하시는 것들을 좋아했다. 엘레 강스하고, 럭셔리하고, 환타스틱 한 것 등등을 좋아했다. 커피를 마셔도 원두커피만 마시고, 옷을 입어도 메이커 옷만 입고, 음식을 먹으러가도 깔끔한 곳만 찾았다. 그리고 음식도 인스턴트 음식만 좋아했다. 서양인도 아니면서 서양인들이 좋아하는 돈가스, 스파게티, 도넛, 햄버거, 빵, 피자, 콜라, 피자 등 외국에서 물 건너 온 음식만 좋아했다. 그리고 벌레만 나타나도 발을 동동 구르며 벌레 잡으라고 소치를 치곤했다.
이러던 아내가 결혼 10년이 지난 후 시골 아줌마가 다 되었다. 먼저 사는 곳이 지방이니 시골 아줌마가 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촌놈이다 보니 음식이 자연스럽게 시골 음식으로 바뀌었다. 서울 아가씨가 이제는 김치도 잘 담근다. 배추김치, 총각김치는 기본이고, 고들빼기김치 같은 특수한 김치도 동네 아줌마들한테 배워서 담근다. 무를 사다가 채칼로 썰어서 무생채도 하고, 무나물도 만들어 먹는다. 이런 나물을 넣고 커다란 양푼에 비벼서 아주 맛있게 먹는다.
시장에 가다가 동네 아줌마를 만나 한참을 서서 수다를 떨고 있을 때, 길을 가면서 아는 동네 아줌마들을 만나 인사하느라 바쁠 때 평범한 시골 아줌마 같다. 산에 가다가 밤을 줍고, 도토리 줍는 것을 좋아한다. 들판에 가서 나물도 캐고, 텃밭에다 상추, 고추, 파 등을 심어 먹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그리고 이제는 벌레가 나타나면 나보다 더 빠르게 달려가 잡아서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 통으로 넣어 버린다. 결혼 생활 10년이란 세월이 서울 아가씨를 시골 아줌마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아내는 그래도 시골 아줌마가 더 좋다고 한다. 이제는 아줌마란 소리가 익숙해졌다고 한다. 길을 가다가 아줌마하면 먼저 뒤를 돌아본다고 한다.
가끔 농담으로 아내에게 말한다.
“아휴 서울 아가씨가 시골 아줌마 다 되었네!”
하면 아내는 그냥 웃어넘기는 여유를 부린다. 이제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의 아줌마로 변한 것이다. 어찌 보면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일지도 모른 생각이 든다.
이제는 서울 아가씨 보다 시골 아줌마가 더 좋다. 마음의 여유도, 삶을 바라보는 태도도 시골 아줌마가 더 좋은 것이다. 그래서 시골 아줌마로 변한 아내가 더 사랑스러운 것이다.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니 갑자기 낭만적인 감정이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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