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이야기

아내의 생일날에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사연

행복한 까시 2009. 9. 27. 08:47

 며칠 전에 아내의 생일이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다. 생일이라고 해야 매년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작 생일날 고맙게 생각하고, 생일상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우리들의 생일날 엄청난 산고의 고통을 받은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일상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바로 어머니인 것이다.


 생일은 다른 한편으로 보면 생활의 활력소이다. 생일날이라는 것 때문에 단조로웠던 일상들에 활기가 넘칠 때도 있고,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리고 생일이라는 것을 매개로 하여 부모님도 찾아뵙고, 가족들도 만나는 것이다.


 아내의 생일날 여러 일들이 있었다. 아내의 생일날 특별한 것을 해 주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일들이 얽혀서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채 지나가 버렸다. 아내는 겉으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섭섭한 마음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여 곡절이 많은 아내의 생일날 일어난 일들이다.

 

 

  #병원 진료


 아내의 생일날 공교롭게도 아내의 병원진료가 예약된 날이었다. 몇 해 전에 건강에 문제가 있어서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는다. 그래서 아내는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간다. 아내를 병원에 보내 놓고는 늘 조바심이다. 아내의 건강에 이상이 없는지 항상 걱정이 된다. 일을 하면서도 아내가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아내가 병원 가는 날은 아내의 전화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내가 전화를 걸어 확인해야 마음이 놓인다. 그날도 검사를 하고 왔는데,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아무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병원 가는 것 때문에 아내는 아침부터 부산하다. 지방에서 서울로 가야 하기 때문에 분주한 것이다. 병원에 가는 중요한 일 때문에 아내의 생일은 희석 되어 작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생일 케이크


 두 딸들은 어마 생일에 케이크를 사겠다고 며칠 전부터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두 딸들은 케이크를 사는 이유가 엄마의 생일도 중요하지만, 아마도 자기들이 먹고 싶은 것이 더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더니 막상 생일날 아침에는 나에게 생일 케이크를 사오라고 주문을 한다. 그러더니 저녁때도 전화를 하니 생일 케이크 꼭 사오라고 당부를 한다.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깜짝 쇼를 해줄 생각으로 케이크를 사온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기대를 하지 않고 받으면 아내와 아이들이 더 좋아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혹시나 케이크를 사오면 내가 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기다려 본 것이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아이들이 케이크를 사오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아내에게 스테이크를 얻어먹었다고 한다. 엄마 생일에 아이들만 스테이크를 얻어먹은 꼴이 되었다.  야근 때문에 퇴근 할 때 케이크를 사가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되었다.

 

 

 # 야근 


 매일 야근이다. 오늘은 아내의 생일이라 특별히 일찍 퇴근 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징크스가 있었던 것일까? 일찍 퇴근하려고 마음먹으면 더 늦게 퇴근하게 되는 것이 얄궂은 운명이란 말인가? 조금만 더 일하려고 저녁을 먹는데, 사장님께서 급한 일이 있으니 회의를 하자고 하셨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든다.  


 저녁을 먹고 일을 하면서 회의를 시작을 기다렸다. 8시가 지나고 9시가 되어도 회의가 시작되지 않았다. 9시가 조금 넘어서야 회의가 시작되었다. 아내의 생일은 아예 포기를 해 버렸다. 아내가 기다릴까봐 아이들과 먼저 자라고 전화를 했다. 아내는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받는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회의가 끝났다. 이렇게 해서 아내의 생일날은 아무 것도 못한 채로 마감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아내의 생일날은 평일보다도 더 못한 수준으로 지나갔다. 결국 너무 미안해서 다음날 케이크를 사 들고 집으로 갔다.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생일날은 그냥 넘기고 다음날 생일 축하를 받게 되었다. 아내도 늦게나마 받은 생일 케이크에 만족해했다. 정말 다행이다. 속으로는 화날 만도 한데, 오히려 늦게 들어온 나에게 더 미안해한다. 이런 것들이 가족의 마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