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이야기

아내에게서 발견한 다양한 여자의 모습

행복한 까시 2009. 9. 13. 08:45

 

  어느덧 결혼한 지 10년에 훌쩍 넘어 갔다. 결혼 후 아이들 둘 낳아서 키우다 보니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사실 아이들을 키운 것을 아내가 거의 다했기 때문에 정신없다는 표현은 좀 과장된 것이다. 그냥 나는 회사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가끔은 문득 아내의 여러 가지 다양한 면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흐뭇해하기도 하고, 미소를 짓기도 한다. 아내는 나에게는 배우자이자, 아이들에게는 엄마로, 시댁에서는 며느리로,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직장인으로 역할을 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역할 속에서 아내의 다양한 면을 발견하게 된다.



 # 어머니


  아내는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거의 항상 나보다 일찍 일어나는 날이 많다. 아침밥을 준비하기 위해서 이다. 과거에는 매일 아침 나를 깨웠지만, 요즘은 나도 잠이 줄어들어 내가 먼저 일어나거나 동시에 일어난다. 아침밥을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것을 보면서 어머니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아내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아침 밥상에서 “많이 좀 드세요.”,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어요.”라고 말할 때에도, 아침에 출근 할 때에도 대문간에 나와서 “운전 조심해요.”, “너무 늦지 말아요.” 라고 잔소리 할 때, 그 모습에서도 어머니를 느낀다.


  또한 아내는 돈도 잘 쓰지도 못하면서 가족들을 위해 먹을 것이며, 입을 것을 구입해 올 때, 한 푼이라도 싸고 싱싱한 채소를 찾아 시장을 헤매고 다닐 때, 매달 적자나는 가계부를 흑자로 맞추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려 대고, 십 원 한 장이라도 아끼려 할 때도 이런 느낌을 받는다.


  식구들은 전기, 물 등을 아끼라는 아내의 잔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펑펑 써대는데, 전기세가 아까워 화장실 갈 때 불도 켜지 않고 들어가고, 쓰레기봉투에 한줌의 쓰레기라도 더 집어넣으려고 애쓸 때 아내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또 발견한다. 아마 마음속에 잠재된 모성애가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거나 마음속에 기억되어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 여자친구


  한가한 일요일 오전 아내와 단둘이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오래된 팝송이나 가요를 들을 때 아내가 여자친구라는 착각이 든다. 또한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서 음반을 고르거나, 책을 고를 때, 단둘이 영화를 보러가거나 경치 좋은 곳으로 드라이브를 나갈 때에도 아내의 모습에서 이성 친구를 느낄 수 있다.


  또한 퀴즈문제를 풀거나 아이들 시험문제를 풀기 위하여 경쟁할 때도, 문제를 풀다가 내가 실수로 틀렸을 때 본인이 이겼다는 승리감으로 기뻐할 때도 아내에게서 여자 친구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 최신 광고를 보다가 스토리 전개에서 내가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생겼을 때 그것도 모르냐고 깔깔깔 웃으며 인심 쓰듯 한 수 가르쳐 줄 때에도 이런 기분을 느낀다. 아내의 이런 모습에서 예전 연애시절의 여자친구를 찾는다.

 

 

 #예쁜 소녀


  아주 분위기 있는 경양식 집에서 아내가 좋아하는 양식을 먹으며 즐거워 할 때, 커피가 아주 맛있는 카페에서 맛있다는 소리를 계속 반복하며 커피를 홀짝홀짝 마실 때 아내에게서 소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옷가게에서 새로 사온 레이스 장식이 달린 화려한 옷을 몇 번이고 입어보며 즐거워 할 때, 새로운 스타일의 머리로 파마를 했다며 어떠냐고 예쁘다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물어 볼 때도 아내에게서 소녀 같은 마음을 느낀다.


  장거리 여행을 계획하고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여행 준비하는 모습에서, 여행지에 도착해서 좋다는 표현을 하며 활짝 웃을 때, 바닷가 모래밭에서 아이들처럼 이리저리 종종 걸음을 칠 때도 아내는 소녀 같은 모습이다. 또한 라디오에서 댄스곡이 흘러나올 때 딸들과 함께 엉덩이를 흔들며 디스코를 출 때에도, 항상 일어나는 사소한 일을 가지고 장모님께 투정 부리는 아내의 모습에서도 어린 소녀의 모습을 본다.              



 #동네 아줌마


  시장에 가다가 동네 아줌마를 만나 한참을 서서 수다를 떨고 있을 때, 길을 가면서 아는 동네 아줌마들을 만나 인사하느라 바쁠 때 동네의 평범한 아줌마를 생각한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다며 집안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며 아들의 엉덩이를 패준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 아이들 때린 것이 마음이 아파서 남몰래 눈물을 훔칠 때 아줌마의 모습을 본다.


  마트 시식코너에 가서 아이들이 먹고 싶다고 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시식코너의 음식물을 잔뜩 집어 올 때, 물건 값이 싸다는 이유로 집에 재고가 남아 있는 물품을 사올 때도 아줌마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가끔 내가 아줌마라고 부를 때 눈초리를 치켜세우며, 아줌마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나에게 아저씨라고 공격할 때도 아내에게서 아줌마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진짜 아내의 모습은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 본다. 아내의 모습이라면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 마치 여러 가지 색깔이 모여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되는 것처럼 그냥 이런 모습들이 모여서 아내의 모습이나 아내라는 역할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대부분의 아내들의 모습이 이런 모습일 것이다. 몇 년 전에 아내의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 그 후로는 아내의 존재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고, 아내에게 작은 것이라도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항상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존재감이 약화되는 존재가 아내의 자리 인 것 같다. 그리고 아내들의 일은 많다. 해도 해도 끝도 없는 집안의 잡다한 일들,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키우는 것들이 아내를 힘들게 한다. 이런 아내들에게 남편들이 겉으로는 점잖게 보이려고 표현을 못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감사하며,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