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이야기

아내가 물건을 사고 싶을 때 남편에게 하는 행동

행복한 까시 2009. 7. 4. 13:33

 어제 저녁부터 아내는 인터넷 좀 들어가 보라고 보챘다. 평상시에 인터넷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아내가 인터넷에 들어가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지만 음모가 숨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내의 한 마디 말에서 그 속셈은 바로 들어나 버렸다.

 

 “ 자기야. 인터넷에 들어가면 DVD를 들을 수 있는 카세트가 있는데, 그것 한 번만 구경해봐”

 

 아내는 구경만 하라고 했지만, 그 말 속에는 여러 가지가 생략되어 숨겨져 있다. 늘 아내는 이런 식이다. 대충 이야기해도 너무나 빨리 알아듣는 나의 성향을 이용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아내의 이야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자기야 인터넷에 들어가면 DVD를 들을 수 있는 카세트가 있어. 그것을 검색해서 인터넷 쇼핑으로 한대 구매해 주면 고맙겠어. 아이들 영어 들려주려고 하거든.’

 

 아내의 이런 속셈을 너무나 잘 알기에 못들은 척 했다. 피곤하기도 하고, 아내의 수법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사실 저번 주에 아이들 영어 공부를 시키려고, DVD를 구입했다. 남들 다 있는 DVD를 뒤늦게 구입한 것이다. DVD를 구입했는데, 또 DVD를 음성으로 듣는 카세트를 또 구입하려니 미안해서 그러는 것이다.


 사실 나는 물건 구입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꼭 필요한 물건을 구입 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물건은 한 번 사면 좋은 것을 사서 오래 사용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10년 넘은 물건들이 많다. 신발에서 자동차, 전자제품들이 거의 10년이 넘어 간다. 완전히 못쓰게 되어야 바꾼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아내는 물건 살 때는 항상 이렇게 간접화법으로 나의 마음을 흔들어서 아내가 원하는 물건을 사고야 마는 것이다.


 아침을 먹자마자 아내는 인터넷에 들어가 보라고 한다.

 

 “자기야 어제 말한 그 카세트 한 번 구경만 해봐. 절대 사라고 하는 거 아니니까. 그냥 한번 보기 만해.”

 

 아내가 두세 번 강조하는 것을 보니 꼭 사고 싶다는 말투이다. 못이기는 체 하며 인터넷에 접속했다. 카세트를 보니 핑크와 하늘색 두 가지가 있었는데, 가격이 119,000원이 붙어 있었다.

 

 “그래 구입하자. 애들 영어 공부시킨다는데, 구입해야지.”

 “자기야 고마워. 정말 고마워”

 

하면서 아내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사실 아이들 것 사는데 아내가 이렇게 미안해하는지 모르겠다. 모두 아이들의 공부를 위해서 구입하는 것인데 말이다. 아내는 DVD를 사고 카세트를 이중으로 사는 것이 미안했나 보다.


 아내는 나에게 곤란한 일을 시킬 때에는 늘 이런 식이다. 신혼초의 일이다. 아내는 불교 신자이다. 그 당시 나는 종교가 없었다. 그리고 종교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이런 나에게 불교를 믿게 하기 위해서 아내는 이와 똑같은 방법을 썼다. 맨 처음에 시도한 방법이 절에 가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 나 절에 좀 데려다 줄려.”

 “ 알았어. 그 정도야 내가 해 줘야지.”

 

 아내는 아무런 말도 없이 절에 데려다 달라고 하였다. 불교를 믿으란 단 한마디 말도 없었다. 그냥 절에만 데려다 달라고 하였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아내를 위해 절에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절 밖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난 후 아내는 수위를 높였다.

 

 “ 법당에 한 번만 들어와 봐.”

 

법당에 들어가는 것이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견딜 만 했다. 그동안 절을 자주 오니 법당도 그리 어색하지는 않았다. 한동안 또 그렇게 법당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아내는 절을 해 보라고 하였다.

 

 “ 절 한번 해봐. 부처님께 절 많이 하면 아주 좋대.”

 

 그 후에는 경전도 읽어 보라고 하며 이런 식으로 아주 천천히 나를 불교 속으로 집어넣었다. 지금도 아주 독실한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절에 잘 다니고 있다.


 아내의 아주 고수다운 행동이다. 강제로 하기 보다는 서서히 빠져들게 하는 고차원적인 방법이다. 바람과 해님의 동화에서 보듯이 강제로 모자를 벗기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자를 벗기는 것이다. 대충 이야기해도 재빨리 알아듣고, 잘 들어주는 나의 허점을 잘 이용해서 아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아내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며 간접적으로 요구 사항을 이야기하면 안 들어 줄 수가 없다.


 결국 오늘도 아내는 약한 척 하며 아내가 원하는 것을 해냈다. 만일 오늘도 아내가 강제로 카세트를 사자고 했으면 사지 못하고, 싸움만 일어났을지 모른다. 아내의 약한 척 하는 수법에 걸려든 것이다. 이렇게 매번 알면서도 당하고, 모르면서도 당하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시대의 남편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