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이야기

아내의 휴대폰에 등록된 다양한 내 별명들

행복한 까시 2009. 8. 18. 11:21

 

 휴대폰이 생긴 후로는 전화번호 수첩이 필요 없어졌다. 전화기에 전화번호를 직접 입력하면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종은 천개까지 입력이 가능하다. 천개 정도면 내 주위의 웬만한 사람들을 모두 등록시킬 수 있는 분량이다. 내 전화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등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전화번호를 등록할 때 거의 이름을 사용하여 등록한다.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버지’, ‘장모님’, ‘사장님’, ‘본가’ 등 이름을 사용하기 곤란한 어른들이다.


 아내도 휴대폰에 사람들의 이름을 등록시킨다. 그런데 유일하게 내 이름은 별명으로 등록한다. 그리고 별명은 자주 바뀐다. 별명이 자주 바뀐다는 것은 내게 그만큼 관심도가 높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이것은 순전히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의 해석이다. 별명으로 등록해 놓고 아내의 기분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것이다. 내가 미울 때는 미움을 지칭하는 별명으로 바뀌고, 내가 좋을 때는 좋음을 뜻하는 별명으로 바뀌는 것이다. 지금부터 아내의 휴대폰에 등록된 내 별명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가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아내의 입장에서 쓴 것이 아니라 등록된 별명을 보고 왜 이런 별명이 나오게 되었는지 내가 가진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서 퍼즐 조각을 맞추듯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다. 

 

 

 # 첫 번째 별명 - ‘남편’

 

 아내가 휴대폰을 처음 장만했을 때 등록했던 이름이다. 휴대폰을 처음 장만하고 나서 순수한 마음으로 등록한 별명이 ‘남편’ 이었다. 남편이란 별명은 너무도 평범해서 별로 쓸 이야기가 없다. 지금도 아내의 휴대폰에 남편으로 등록되었다면 이글도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 두 번째 별명 - ‘소중한 늑대’

 

 아내의 휴대폰에 등록된 남편이란 단어가 너무 평범해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남편이란 단어가 지루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남자들을 지칭하는 늑대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늑대라고 두자로 등록하기는 왠지 허전한 것이다. 그래서 별명에 인심 한 번 후하게 쳐서 ‘소중한’ 이라는 형용사를 붙여 넣은 것이다. ‘소중한 늑대’ 라고 표현하니 그다지 혐오감도 줄어들고, 어찌됐든 ‘소중한’ 이라는 단어를 붙이니 명분상으로도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한동안 나는 ‘소중한 늑대’로 아내의 휴대폰에 자리하고 있었다.

 

 

 # 세 번째 별명 - ‘블로그 맨’

 

 예전에 블로그를 처음 개설하고, 몇 편을 글을 썼는데 우연인지 몰라도 인기가 제법 있었다. 자연스럽게 독자들도 늘어나고, 어쩌다가 글이 블로그 첫 화면에 올라가면 또 한번의 설렘과 흥분된 감정을 맛보게 되었다. 그때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방문자들이 순식간에 수 십 명씩 들어온다. 이런 짜릿한 유혹 때문에 이 시기에는 의도적으로 글제목도 멋지게 써보려고 노력도 하고, 글도 잘 쓰기 위해서 노력도 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 아이디어도 많이 찾고, 공부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집안일에 소홀하게 되었다. 아내는 컴퓨터에 매달려 블로그만 하는 내가 늘 불만이었다. 그 불만을 휴대폰에 ‘블로그 맨’으로 등록시켜 조금이나마 해소 하였다. 지금은 그 때보다 블로그 하는 시간과 횟수가 많이 줄어  들었는데, 아직도 아내의 마음에 드는 수준은 아닌 것 같다.

 


 # 네 번째 별명 - ‘엄맘마마’

 

 블로그에 써 놓은 글을 보면 어머니가 많이 등장한다. 내가 읽어 보아도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블로그에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을 변명하자면 어머니는 과거형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헤치자면 자연스럽게 어머니가 등장한다. 어린시절의 추억 속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있었다. 그만큼 어머니는 늘 내 주위에 있었다. 그러니 과거의 이야기를 하자면 어머니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이런 어머니의 글을 마음속으로 내심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내이다. 어머니에 대한 글이 나오면 아내는 나를 놀리는 것으로 공격을 대신한다.


 “ 아휴 당신은 엄마 밖에 몰라. 엄맘마마마마~마~마.....엄맘마마마마~마~마....”

 특유의 악센트까지 넣어가며 나를 놀려 댄다. 그것도 부족하면 핸드폰 속의 내 별명에도 ‘엄맘마마’라고 써 놓기도 한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쓰면 아내는 질투심이 발동하는 것 같다. 하긴 나도 아내가 장인어른에 대한 이야기를 멋지게 블로그에 쓴다면 아내와 같이 질투심이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내보다도 더 불편한 심기를 들어낼지도 모를 일이다.

 

 

 # 다섯 번째 별명 - ‘까시’

 

 ‘까시’는 고등학교 때 별명이다. 지금도 깡말랐지만, 고등학교 때도 너무 말라서 친구들이 부른 별명이다. 그땐 싫었지만, 지금은 이 별명도 사랑할 만큼 원숙해 졌다.


 ‘까시’의 정확한 표현은 가시이다. 가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동물 또는 식물에 붙어있는 기관이다. 동물들은 털이나 뼈가 진화해서 생기고, 식물들은 잎, 줄기, 열매 등의 기관이 진화해서 생긴 것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까시’의 의미는 세상을 날카롭고 정확하게 보자는 의미로 ‘까시’라는 예명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세상을 정확하게 보는 사람은 아니다. 그냥 정확하게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그래서 블로그명을 ‘까시’로 지은 것이다. 독특하기도 내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지만 담긴 의미도 좋아서 블로그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블로그명을 아내의 휴대폰 별명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아내는 저작권료도 내지 않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저작권료를 달라고 하면 뽀뽀나 한 번 해준다고 생색을 낼 것이다. 

 

 

 # 여섯 번째 별명 - ‘백만원’

 

 얼마 전에 백만 원 때문에 아내와 다퉜다. 자세한 싸움이야기는 아내와 나와의 개인적인 사생활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 백만 원 때문에 싸웠다면 대충 상상이 갈 것이다. 아내는 한푼 두푼 아끼고, 아이들 학원도 제대로 못 보내고 있는데, 내가 백만원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에 쓰려고 해서 부부 싸움이 일어난 것이다. 원인제공은 거의 내 쪽에서 백퍼센트 제공한 것이었다. 부부싸움은 일단락되었지만, 아내는 아직도 앙금이 남아 있는 것 같다. 휴대폰에 나를 지칭하는 별명으로 ‘백만 원’으로 표시해 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별명으로 바뀌겠지 하며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백만 원’이란 별명은 아내의 휴대폰 속에 아직도 유유히 자리 잡고 있다.

 

 

 이 밖에도 기억나지 않는 여러 개의 별명이 있다. 머리 속에 기억으로 스쳐 지나간 몇 개만 풀어 놓은 것이다. 아내의 휴대폰에서 여러 개의 별명이 등록되고 바뀌는 것은 나에 대한 아내의 관심이 크다는 표시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별명을 휴대폰에 등록해서 나를 놀려도 화가 나지 않고, 오히려 사랑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