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이야기

시래기나물과 아내의 자존심

행복한 까시 2009. 1. 15. 12:36

 

 아내가 시래기나물에 도전했다. 우리나라 반찬들 중에서 나물반찬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아내는 시래기나물 만들 준비를 한다. 반찬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그냥 무치면 나물이지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겉으로 이런 표현을 했다면 아내는 당장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당신이 한번 해 보시지, 어디 얼마나 잘 하나 봅시다.”

   “나물 반찬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나 알아요. 나물 반찬 잘 하는 사람이 음식 진짜로 잘 하는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즐겁게 시래기나물을 만드는 아내의 기분을 살리기 위해 접대용 멘트를 날렸다.

  “나 시래기 나물 좋아하는데, 맛있게 만들어 보셔.”

  “토종이라 그런지, 그런 음식들이 좋아. 아무래도 난 촌놈인가 봐.”

 

 시래기를 삶는지 아내는 부엌에서 분주하게 오간다. 오전부터 시작된 시래기나물은 저녁상에나 올라왔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다. 이제야 아내가 시래기나물을 한다고 나에게 자랑삼아 이야기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만큼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만드는 과정이 복잡해서 나에게 생색을 내려 한 것이다. 그리고 어려운 시래기나물을 만드니 그 노고를 알아달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내에게 속으로 냉소를 보냈던 것이다. 아내에게 슬슬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모르면 가만이나 있을 것이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뉘우치는 마음으로 시래기나물을 먹으며 아내에게 맛있다는 표현으로 만회하리라고 속으로 마음먹었다. 맛있다는 말을 건네면 아내의 기분이 한층 좋아질 것이다.


시래기나물 한 젓가락을 입에 넣으니 그런대로 맛이 있었다. 그냥 저냥 먹을 만했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약간 부족한 맛이 난다. 그 맛이 무슨 맛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맛있다고 표현한다고 그렇게 다짐을 해 놓고도 아내에게 한 마디를 했다.

  “뭐가 약간 부족한 것 같다. 무엇 때문일까?”

  “멸치 좀 넣고서 하지 그랬어?”

아내가 한 마디를 한다.

  “아마도 조미료가 안 들어가서 그런가봐. 조미료 맛이 빠져서 그럴 거야.”

  “난 멸치 비린내가 싫어. 멸치 넣어서 다시 할 테니까 당신 혼자 다 드세요.”

나 혼자 다 먹으라는 말에 나는 후퇴를 선언했다.

  “ 아냐, 그냥 먹을 만해. 그냥 먹어”


 평소에 음식 탈을 잘 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왜 음식 타박을 했는지 모르겠다. 겉으로 표현은 안했지만 아내는 기분이 나쁜 표정이다. 미안하기도 하고, 의기소침해진 아내에게 장난을 걸어 본다.

  “ 당신 내가 시래기나물 별로라고 해서 기분 나쁘지.”

  “ 아냐, 그 까짓것 가지고 뭘 기분 나쁘고 좋고 해.”

아내는 이렇게 말은 하고 있지만 기분이 나쁜 표정이 역역했다. 말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얼굴에는 약간 기분 나쁘다는 표정이 남아 있다.


 아내는 자존심이 강하다. 아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내가 여자라서 그런 것이다. 특히 음식에 대해서는 자존심이 강한 것이다. 맛이 별로라는 말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내가 너무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해서 시래기나물 사건이 일단락 된 줄 알았다.


 다음날 상에 시래기나물이 올라오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도 시래기나물의 양이 그리 적은 양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먹지 않기 때문에 그새 다 먹을 리는 없다. 아내에게 슬쩍 물어 보았다.

  “시래기나물은 다 먹었어?”

  “아니, 버렸어.”

아내가 대수롭지 않은 듯이 대답한다.

그 말에 이어 또 한번 아내의 자존심을 긁었다.

  “시래기나물 정말로 이상 한 것 맞지. 이상해서 버린 거지. 인정 할 거면 인정해.”

아내는 인정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 아냐, 이상하지 않았어. 당신이 별로라고 해서 버린 거야.”

화살이 나에게로 향한다.

 

 좀 참고 잘했다고 할 걸 그랬나 하고 후회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했더라도 아내가 시래기나물의 맛을 인정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도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맛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내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 자존심 때문인 것이다. 부엌에서 일어나는 일 만큼은 자존심을 구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인정하지 않는 아내가 사랑스러운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눈에 콩깍지가 끼어서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