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책을 읽는 것은 작가와 대화하는 것이다.

행복한 까시 2010. 5. 13. 19:55

 비가 오락가락한다. 흐린 날씨와 같이 내 마음도 복잡하기만 하다. 목 뒷덜미가 뻐근해 오는 것을 보면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다. 이 스트레스는 누가 원인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나 혼자만의 아우성이다. 나 자신에 대한 원망, 자책감, 후회, 콤플렉스 같은 것이 복합되어 내 마음에 흠집을 내는 것 같다.


 토요일부터 큰 딸은 도서관에 가자고 졸랐다. 일요일 아침 특별한 일이 없고, 집에 있자니 몸이 근질근질하여 도서관으로 향했다. 가족들이 모두 가서 책을 읽는다는 것도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다. 나 또한 복잡하고 심난한 마음을 다스리는 데는 독서만큼 좋은 도구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끈적끈적한 소설에 빠져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그런 소설을 읽고 나면 실컷 울어버린 것처럼 마음이 후련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을 고르려고 서가 앞에 섰다. 도대체 책을 고르기도 쉽지 않았다. 보통 때 같으면 눈에 들어오는 한 권을 쉽게 뽑아들 수가 있었지만 오늘만은 선뜻 책을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 서가 앞에 오랫동안 책을 고르는 내 모습을 누구에게 들킬까봐 가끔 옆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책을 골랐다. 한참을 골랐으나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한참을 서성이다가 드디어 책 하나를 골라잡았다.


 한창훈님이 지은 “열여섯의 섬”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의 느낌이 좋아 책속을 대충 살펴보니 그런대로 내용이 괜찮은 것 같다. 엄마는 꿈을 찾아서 두 언니를 데리고 육지로 나갔다. 엄마가 떠나고 소외감을 느낀 아버지는 배신감에 술주정만 늘어간다. 주인공 서이를 보살펴 주는 사람은 이모와 남자친구인 이배뿐이다. 꿈은 높고 크기만 한데 인문계 고등학교는 꿈도 꿀 수 없는 현실이 서이를 미치게 한다. 다른 세계로 가는 유일한 통로는 공상뿐이다. 멋진 공상을 하지만 현실은 늘 구질구질 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섬에 낯선 여자가 들어온다. 바이올린을 켜며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여자를 만나면서 서이는 서서히 숨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방이 바다로 막힌 외로운 섬을 배경으로 열여섯 살 서이의 아픔과 고독, 그리고 간절한 꿈들을 그린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꿈을 생각해 본다. 아니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사람들 모두 꿈을 가지고 있다. 하고 싶어 하는 일, 되고 싶어 하는 인물, 살고 싶은 집이나 환경, 미래의 생활에 대한 기대 등 각자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주인공 서이처럼 공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공상하곤 한다. 공상을 할 때면 가슴이 콩콩 뛰면서 기분 좋은 마음이 들지만 공상이 끝나고 나면 그 허무한 마음은 땅으로 추락하고 만다. 공상은 단지 공상하는 시간에만 즐거운 것이다. 아마도 이 작가님도 자신의 공상을 서이를 통해서 표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사람들은 남들이 가진 것을 동경한다. 섬에 사는 사람들은 육지를 동경하고, 육지에 사는 사람들은 섬을 동경한다. 시골에 사는 이들은 도회지를 동경하고, 도회지에 사는 이들은 시골을 동경한다. 늘 그런 동경에 굶주려 있다. 하지만 육지 사람이 섬에 가서 살아도, 섬 사람이 육지에 와서 살아도 욕구가 완전히 충족되지는 않는다. 아마도 인간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무한한 욕구 때문일 것 같다. 그 욕구가 인류문화와 문명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옆에서 책을 읽고 있는 집사람을 보니 사랑이야기인 “폭풍의 언덕”을 읽고 있다. 한참을 읽더니 내게 말을 건넨다.

 

“전에도 이 책을 읽었는데, 이번 느낌은 영 색다른 것 같아”

“같은 책이라도 어느 나이에 읽었느냐에 따라 다가오는 감동의 크기가 달라”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와 대화를 하는 것이야”


 책을 읽을 때 작가를 이해할 수 있어야 진정한 책을 읽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이 책을 읽었어도 그 사람의 지식이나 경험의 차이, 세계관의 차이에 따라 다가오는 감동은 많은 차이가 있다. 세상 경험을 많이 한 사람들이 더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슬픈 드라마를 볼 때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우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어린왕자”를 읽고 이런 것을 많이 깨달았다. 어렸을 때 읽은 “어린왕자”는 단순히 그냥 어린애의 이야기로만 느껴졌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읽으니 구구절절이 진한 감동으로 다가 왔다. 어릴 때에는 어른들의 세계를 경험해 보지 못해서 별로 감동을 느끼지 못했던 것뿐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 어린이의 세계와 어른들의 세계를 모두 경험하고 나니 비로소 이해가 되고, 작가와의 대화가 된 것이다.


 그리고 작가와 소통을 할 때 책은 더 친밀한 느낌으로 다가 온다. 작가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이 그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소설가의 자질이 있는 것이다. 시를 많이 읽는 사람 또한 시를 잘 쓸 수 있는 사람이다. 단지 잘 쓰고 못쓰는 것은 개인의 역량 차이 일뿐이다. 소설가의 섬세한 묘사 때문에 소설을 읽고, 시인의 아름답고 함축적인 표현 때문에 시를 읽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작가와의 대화, 책을 읽을 때 한번쯤 생각해볼 소중한 미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