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엄마 왜 달이 자꾸 우리를 쫓아오나요?”

행복한 까시 2010. 5. 26. 07:24

 달이 환하게 뜬 한밤중이다. 우리 가족은 자동차를 타고 이동 중이다. 달이 밝게 비추는 밤에 운전을 하는 것도 낭만이 있다. 사실 도회지에 살고 있으니 밤에 하늘을 보기가 어렵다. 갖가지 색상의 조명과 간판들이 어지럽게 거리를 밝히고 있어 하늘을 올려다 볼 여유를 주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도시에 살면 밤이건 낮이건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환경과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 같다.


  운전을 하며 가고 있는데, 작은 딸이 질문을 한다.

  “엄마, 왜 달이 자꾸 우리를 쫓아오나요?”

 

  아내가 대답한다.

     “엄마도 예전에 너와 똑같이 물어 보았단다.

       달이 환하게 뜬 밤에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달이 쫓아오는 것을 보았지.”

     “달이 쫓아오는 것은 달이 아주 멀리 있기 때문이란다.

       아주 멀리 있기 때문에 우리가 움직여도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그래서 달이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란다.”

 

  그리고 아내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에게 물어 보았을 때 뭐라고 말씀 하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시끄럽다고 했을 거야.

      그 당시 엄마는 너무 힘들었으니 말이야.”

 예전의 어른들은 모두 그랬다. 아이들이 질문하면 시끄럽다는 대답으로 아이들의 궁금증을 무시해 버렸다.  


 달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어릴 적 추억이 생각난다. 달밤에 동요를 부르며 놀곤 했다. 그중에서도 “달 밝은 가을밤에”로 시작하는 기러기란 노래는 가을 분위기에 잘 어울렸다. 어린 시절 이 노래를 잘 불러 동요 대회에 나갔던 친구가 생각이 난다. 그 친구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아이를 두 명쯤 둔 아줌마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노래는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로 시작되는 달맞이 노래이다. 이 노래를 생각하노라면 누나들 생각이 난다. 아주 어린 시절 달밤에 나와 누나들이 이 노래를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하늘 위로 흘러가는 달을 바라보며 이 노래를 부르던 시절은 행복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달이 구름사이로 지나가는 모습은 자꾸 보아도 신비하기만 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아마도 다섯 살 때로 기억되는데, 달력에 달 착륙 그림이 생각난다. 1969년에 달에 착륙했으니까 아마도 1970년도 달력에는 인류의 달 착륙 그림이 있었다. 그 때 그 그림은 아직도 인상에 깊이 남아 있다. 안방 아랫목에 걸린 달력에 인쇄된 그림은 우주인이 달에 착륙한 모습이 있었는데, 어릴 적에는 아주 신비하기만 했다. 그 때는 그 그림이 달 착륙인지도 몰랐다. 그냥 보통 그림하고 다르니까 신기해서 뇌리에 남은 것 같다. 나중에 학교에 다닐 때 교과서의 그림을 보고 나서야 그 때 그 그림이 달 착륙 그림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낸 것이다. 달이 태양빛에 반사되어 빛을 낸다는 것을 과학시간에 배우고 나서는 달에 대한 호기심이 많이 떨어졌다. 호기심뿐만 아니라 신비함도 떨어지고, 학창시절에는 달이 그냥 아무것도 아닌 우주를 구성하는 자그마한 구형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좀 더 자라서는 달이 뜨는 밤에는 친구들과 어울려서 많이 놀았다. 주로 하는 놀이는 술래잡기 놀이였다. 친구들끼리 편을 갈라서 아주 깊숙이 숨는 것이다. 산에도 숨고, 동네를 멀리 벗어나 숨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찾다가 못 찾으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하기도 하였다. 그것이 상대방을 골탕 먹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리고 청년시절에는 달이 뜨는 강변에 나가 친구들과 술을 먹으며 인생을 논하기도 했다. 그 당시 논했을 인생이야기가 빤한 것이지만 나름대로 운치와 낭만이 있었다.

  결혼 전에 아파트에 혼자 살 때에는 달이 뜨는 밤이면 거실에 나와서 잠을 잤다. 달이 거실까지 환하게 들어와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거실에 누워 하늘의 달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도 생각이 나고, 좋았던 추억이 생각났다. 달과 관련된 추억은 아름답고 고왔던 추억이 더 많았다. 거실에 누워서 이런 추억을 떠올리며 비시시 웃기도 하고 그랬다. 결혼 후에도 아이들이 생기기 전까지는 달이 뜨는 밤이면 거실에 나와서 잤다. 둘이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 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는 이런 멋도 없어졌다. 언제 보름달이 뜨는지도 모르고 시간이 지나갔다. 아이들을 키우는데 정신을 팔다가 보면 보름달도 다 귀찮아 지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니 달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달에 대한 관심을 보이니 나도 달에 대한 추억이 떠올려 진다. 예전에 내가 간직한 달에 대한 추억을 이제 아이들이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우리 작은 딸도 아이들에게 아내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