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고향에 다녀오면 즐거움과 슬픔이 교차한다.

행복한 까시 2010. 6. 8. 13:23

 

 주말에 고향에 다녀왔다. 지금 시골은 일손 부족으로 난리이다. 부족한 일손을 조금이나마 거들어 드리려고 고향으로 향했다. 사실 도움을 주려고 가도 그리 큰 도움은 되지 못한다. 고향을 떠나 온지 오래되어 일을 잘 할 줄 모른다. 마치 체험 삶의 현장에 출연한 연예인들처럼 사고나 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일손을 도우러 가는 것보다 바쁜 일을 함께 공유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지도 모르겠다. 


 고향으로 가는 길은 즐거웠다. 자주 가는 고향이지만 고향에 갈 때에는 들뜬다. 마치 어린아이가 여행을 떠나는 것 이상이다. 아마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만큼 어린 시절의 환경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이다.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고향이 있고, 고향에서의 다양하고 풍성한 추억을 갖고 있어서 행복감을 느낀다.


 고향집에 도착하니 집은 텅 비어 있다. 아마도 모두 들에 나가셨나 보다. 대충 옷을 갈아  입고 대문을 나선다. 형과 형수는 복숭아밭 과수원에서 복숭아를 솎고 있다. 지난겨울과 올 봄 지독한 추위로 냉해를 입어 복숭아나무들이 군데군데 죽어 있다. 형은 속상하다고 하시면서도 그래도 이만한 것이 다행이라고 하신다. 아버지는 고추밭에 어머니는 깨밭에 계시니 가보라고 한다.


 고추밭에서 아버지는 풀을 뽑고 계신다. 그리고 어머니는 조금 떨어진 다른 곳에서 참깨 밭을 매고 계신다. 어머니에게 웃으면서 여쭈어 본다.

 

 “두 분 싸우셨어요? 왜 따로따로 밭을 매세요. 함께 매시지.”

 “너희 아버지는 이런 것 잘 못하신다. 그리고 먼지가 많이 나서 기침 할까봐 고추밭에 풀 뽑으시라고 했다.”

 

 서로 위해주시면서 일을 하시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게다가 덧붙여서 말씀하신다.

 

 “너희 아버지는 일을 하지 말래도 하신다. 집에 계셔야 하는데, 엄마 도와준다고 저리 하는 구나.”

 

  아버지는 지난겨울 수술을 하셨다. 지금은 다 나으셨지만 일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머니가 힘들까봐 함께 나와서 일을 하시는 것이다. 이 모습을 보면서 나이가 들면 부부 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는 쓸쓸함이 자리하고 있다. 두 분 모두 거동도 힘든데 힘든 농사일을 하고 계시니 가슴이 아픈 것이다. 심심풀이로 하는 농사일이 아니라서 마음이 더 무거운 것이다.


 게다가 형수는 아프다.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정신이 아프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과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자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그대로 방치하니 형수의 병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져 가는 것 같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터질 지경이다. 


 고향집에서 하루 밤을 지내고 돌아왔다. 출발 할 때의 즐거움과 떠나올 때의 슬픔이 교차하고 있다. 차라리 가지 말 것을 하는 후회도 밀려온다. 눈으로 보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는 입장이다. 내가 갔을 때 좋아하시던 부모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 많은 일을 도와드리지 못했어도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하시는 부모님이다. 그래서 더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 것이다. 떠나올 때 어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자식들은 올 때는 반가운데, 떠날 때는 서운한 것이 자식인가 보다. 내가 나이가 드니 더 그런 것 같다.”


 자식이란 이런 존재인 것 같다. 서로 고생하는 것을 보면 마음 아파하는 것이 부모 자식 간이다. 부모님을 위해 아무 것도 해드릴 수도 없고, 해드리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 없이 작게 느껴진다. 그냥 자주 찾아뵙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