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고향집을 지키는 귀여운 청개구리들

행복한 까시 2010. 7. 5. 07:00

 

 고향집에서 아침을 맞았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려고 현관문을 여니 청개구리 몇 마리가 창문에 붙어 있다. 너무 작아서 귀엽기만 하다. 손톱보다 작은 청개구리가 앙증맞다. 집에 데려다 애완용으로 키우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가 집에서 청개구리를 키울 수 없게 만든다.

 

 제일 먼저 걸리는 문제가 동물 학대이다. 자연에서 사는 동물들을 집으로 데려오면 그 자체가 동물 학대이다. 동물은 자연에서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 자연의 법칙과 경쟁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집에 데려오는 순간 동물들은 자유를 박탈당하고, 먹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먹지 못하고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 다음은 우리 집 여성들이 징그럽다고 싫어 할 것이다. 개구리 말만 들어도 징그러운 동물이다. 작은 딸은 아직 어려서 좋아할지 몰라도 아내와 큰딸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양서류나 파충류를 싫어한다. 그래서 남자들은 개구리를 가지고 장난을 많이 친다. 여자들이 깜짝 놀라 호들갑 따는 것을 남자들은 즐기는 것이다.


 청개구리 하면 추억이 많다. 어린시절 청개구리가 흔했다. 연두색 피부를 가진 청개구리가 어린시절 충격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보호색으로 치장한 청개구리가 어린시절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청개구리를 가지고 놀고 싶었지만 전해 내려오는 전설 때문에 가지고 놀지 못했다. 청개구리를 괴롭히면 죄를 받는다고 아이들에게 전해 내려 왔다. 이유도 모른  채 청개구리를 건드리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만지거나 건드리지도 못했다. 오히려 청개구리를 보는 것조차도 싫어했다.


 청개구리를 건드리면 죄를 받는 이야기는 아이들이 잘 못 이해한 것 같다. 동화에서 나오는 이야기처럼 부모의 말을 듣지 않아서 평생 죄를 안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이 동화 때문에 청개구리 하면 말을 듣지 않는 것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한편으로  보면 청개구리도 동화의 피해자인 셈이다. 


 아침에 청개구리를 보고 기분이 좋았다. 귀엽고 깜찍한 청개구리를 보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휴대폰 카메라를 갖다 대었다. 놀라서 달아나는 놈도 있고, 가만히 있는 놈도 있다. 분꽃에도 청개구리가 여러 마리가 붙어 있다. 아마도 같이 부화를 한 것 같다. 모두 귀엽기만 하다. 어린시절 건드리면 죄 받을까봐 무서워하던 청개구리가 지금 보니 정겹기만 한 것이다.   


 오늘도 청개구리를 보면서 어린시절 추억을 건졌다. 그냥 지나쳤으면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청개구리를 보는 순간 내 시선이 고정되었다. 세월은 흘렀어도 색깔, 모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청개구리가 정겹기만 한 것이다. 마치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추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 사진과 글을 남겨 본다.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

자세히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