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전에 만났던 사람이 기억을 못하면 기분이 상한다.

행복한 까시 2010. 7. 8. 12:00

 어제는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회의가 있었다. 세미나, 회의 등이 있어 가끔 만나기 때문에 업계 사람들을 대부분 알고 있다. 같은 업종에서 오래 일을 하다가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다. 회의 시작 전에 명함을 교환하며 인사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는 사람이라 인사를 생략하고, 모르는 사람들만 명함을 교환했다.


 인사를 하는데, 내가 잘 아는 사람이 명함을 주며 인사를 청했다. 순간 기분이 상했다. 그 사람은 그냥 한번 보고 스친 사람이 아니다. 불과 3개월 전에 저녁까지 같이 먹은 사람이다. 그리고 서울에서 승용차까지 같이 타고 지방으로 내려온 사람이다. 그런데 기억을 못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분은 나빴지만 인사를 했다. 나를 모른다고 하니 인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인사를 하고 나서도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나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그러니 기억을 못하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 잘 기억 한다는 것이다. 별로 중요도가 없는 사람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것 때문에 기분이 더 불쾌했다.     


 나는 사람 기억을 잘 한다. 아마도 타고난 공간 지각 능력 때문인가 보다. 어린시절부터 그림이나 사람, 물건의 형체, 지형 등을 잘 기억했다. 한번 가 본 곳이면 잊지 않는다. 그 때문에 길을 찾아 헤맨 적이 별로 없다. 외국에 나가서도 길을 잘 찾아다닌다. 같이 출장 나간 동료들도 길을 잘 찾는 나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출장을 가거나 먼 길을 떠나면 언제나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길을 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길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사람 기억을 잘 하기 때문에 스쳐 지나간 사람들도 놓치지 않고 기억한다. 가끔 사람들을 보고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마트의 계산원이거나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몇 번 마주친 사람, 동네 가게의 주인, 나와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는 다른 부서의 사람인 것이다. 이렇게 내가 사람 얼굴 기억을 잘 해서 더 기분이 나쁠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잣대를 적용하여 기준을 삼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 얼굴 기억을 잘 하니 남들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유난히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쪽 방면으로는 타고 나지 못한 것이다. 아마도 어제 인사를 나눈 그 사람도 사람 기억을 잘 못하는 부류의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 내 방식대로 불쾌했다가 내 방식대로 기분을 추스려 본다. 

 

 어쨌든 같이 밥을 먹고 오랜 시간 옆에 있었는데도 기억을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나도 그런 일이 없었는지 반성해 본다. 분명 나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단지 내가 모르고 넘어갔을런지 모른다. 왜냐하면 나도 필요에 따라 내가 중요한 것은 기억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은 뇌의 저장장치가 소홀히 대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사람과의 만남에서 좀더 신중해져야 겠다. 한 번 만나고 나서 기억을 못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존재감이 강한 동물이다. 그래서 자신을 기억해 주지 못한면 불쾌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