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왕비처럼 자는 아내, 머슴처럼 자는 남편

행복한 까시 2010. 10. 14. 07:05

 

 

 아내와 나는 잠자는 것에 대해서는 정반대이다.

달라도 어떻게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 마치 남쪽 끝에서 온사람과 북쪽 끝에서 온 사람들 같다.

 

 아내가 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은 궁궐에 사는 왕비마마의 조건 보다도 까다롭다.

 

 먼저 조용해야 한다.

텔레비젼을 보거나 음악을 틀면 난리가 난다. 아내가 잘 때에는 무조건 조용해야 한다. 아내가 잘 때에는 딸들도 떠들거나 장난을 치지 못한다. 시끄럽게 했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시계가 똑딱이는 소리, 귀뚜라미 울음소리, 비오는 소리 조차도 아내의 수면을 방해 한다. 조그마한 소리라도 들리면 아내는 잠을 이루지 못해 아침에 일어나면 토끼눈처럼 빨갛게 된다.

 

 다음은 빛이 없어야 한다.

빛이 조금이라도 새어들어 오면 잠을 못이룬다. 컴퓨터에서 새어나오는 작은 불빛, 콘센트 불빛, 아파트의 앞동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가로등의 불빛도 아내의 잠을 방해하는 불청객이다.

 

 그리고 방의 온도가 적당해야 한다.

방바닥에 조금 한기가 느껴져도 잠을 잘 못이루고, 조금 더워도 잠을 잘 못이룬다. 더운 여름철에는 시원한 곳을 찾아 집안 구석구석을 다니며 잠을 청한다.

 

 잠잘 때 입는 옷도 중요하다.

옷이 커서 감겨도 안되고, 옷이 작아서 온 몸을 조여도 안된다. 옷에서 소리가 나서는 안된다. 면처럼 편안한 옷이여야 한다. 그래서 잠잘 때 입는 옷은 구멍이 날 정도로 아주 오래 입는다.

 

 

반면에 내가 잘 수 있는 조건은 아무데서나 잘 자는 머슴 같이 털털하다.

 

 나는 잠이 참 많은 사람이다. 잠자는 것이 제일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잠잘 때 조용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시끄러워도 잘 잔다. 한번 잠들면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잔다.

이점을 아내가 가장 부러워 한다. 음악을 크게 틀고도 잘 자고, 텔레비젼을 보다가도 잠을 잘 잔다. 천둥 벼락이 쳐도 모르고 잘 잔다. 버스 안에서도 잘 자고, 회사의 책상에서도 잘 자고, 도서관에서도 잘 잔다. 머리만 기댈 때가 있으면 잠을 잘 자는 것이다.

 

 빛도 내가 잠자는데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을 켜 놓고도 잘 잔다. 학창시절 공부하다가 잠이들면 새벽까지 불켜놓고 잔적도 많다.

 

 온도 또한 나의 잠자리를 방해하지 못한다.

아주 춥지만 않으면 잘 잔다. 여름철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날에도 잘 잔다. 덥던 춥던 오랫동안 자는 것이 그저 좋은 사람이다.

 

 신혼 초에는 잠자리 때문에 오해도 많았다.

아내가 시끄러워서 잠 못자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아내가 잠자리에 들면서 텔레비젼을 조용히 하라고 하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 한번 자면서 되게 요란하다고 생각했다.

 

오래 살다가 보니 이해가 된다.   

아내는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다. 예민하기 때문에 잠을 잘 못이루는 것이다. 요즘은 아내에게 보내는 아침인사가 '잘 잤어요?' 이다. 예민한 아내를 위해 잘 잤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소리 없이 아주 조용히 잤는데, 이제 나이가 드니 코도 골고, 입에서 소리를 내면서 잔다. 이런 나의 잠버릇 때문에 아내는 잠을 못 이룬다. 나의 시끄러움을 피해 이방 저방을 드나들며 잠을 청한다.

 

 아내도 예전에 비해 잠잘 때 신경이 많이 무뎌졌다.

하지만 아직도 보통 사람들에 비해서는 예민한 편이다. 왕비처럼 까탈스러운 아내의 잠자는 환경도 나에게는 어느 정도 익숙해 졌다. 같이 살다가 보니 조금씩 서로 적응이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왕비같이 자는 아내와 머슴 같이 자는 나와는 좀 더 적응을 해야 고요한 밤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