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딸아이의 풋사랑

행복한 까시 2010. 10. 5. 07:05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딸이 짝사랑에 빠졌다.

상대는 작년에 같은 반을 한 녀석이다. 너무 내성적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자존심이 강해서 그런지 큰딸은 표현을 하지 못했다. 아니면 사랑이란 단어를 말하기가 부끄러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데, 겉으로는 표현을 못한 모양이다. 가족들에게 말하는 것조차 인색한 큰 딸이다.


 작년에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같은 반에 한 여자애가 전학을 왔다. 서울 위성도시에서 전학을 왔다고 한다. 아무래도 수도권에서 온 아이라 표현을 잘 했나 보다. 큰딸이 좋아한다는 그 녀석과 전학 온 여자애가 친하게 지냈다고 했다. 이 모습을 본 딸은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고민을 했었다. 너도 표현을 해 보라고 일러 주었지만, 큰딸은 자존심 상한다며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이 사건도 서서히 잊혀져 같다.


 며칠 전에 옛이야기를 하다가 그 녀석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은 잊었느냐고 물으니까 아직도 잊지를 못했다고 한다. 여전히 그녀석이 큰딸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모양이다. 짝사랑에 고민을 하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안쓰럽기도 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린시절 나의 풋사랑이 떠올랐다.

중학교 때였다. 정갈하게 생긴 여자애가 있었다. 공부도 제법 잘 했다.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그 애가 글짓기를 잘 한다는 것이었다. 그 애와 나는 같은 글짓기 반에 들어 있었다. 나도 큰 딸처럼 용기가 없어 말 한번 건네 보지 못했다. 오로지 마음속으로만 좋아한 짝사랑이었다. 그냥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그런 존재였다. 다른 여자애들에게는 말도 잘 하고, 장난도 쳤지만, 유독 그 애한테는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웃음만 나온다.

사랑은 쟁취하라고 있는 것인데, 말 한번 건네지 못했으니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애와는 인연이 아니었다고 나름대로 합리화도 시켜 본다. 그리고 이제 와서 짝사랑의 추억을 더듬어 볼 수 있으니 또 하나의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절 그 흔한 짝사랑도 없었다면 재미없는 인생이었을 것이다.


 큰 딸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사랑은 용기 있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란다.”

 “마음을 표현하기 싫으면, 차라리 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많으니, 너무 한 남자에게만 집착을 말아라.”

 “아직은 풋사랑이고, 짝사랑이니 너무 고민하지 마라. 풋사랑도, 짝사랑도 모두 인생의 한 과정이란다. 사랑을 배워가며 사람은 성장하는 것이란다.”


 큰딸의 풋사랑에 내 가슴이 설레는지 모르겠다.

풋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 큰 딸의 풋사랑이야기를 들으니 황순원님의 작품 ‘소나기’가 떠오른다. 크리스탈처럼 맑고, 사과 같이 상큼하고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구름 같은 순수한 풋사랑이 생각이 나는 것이다. 가을이라서 더욱 그런 감정이 가슴을 더 파고드는 것 같다. 


 딸의 풋사랑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설레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항상 아기처럼 어리다고 생각한 딸아이에게 사랑의 감정이 찾아왔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어느덧 딸이 성장했다는 것이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말에 부모 마음도 같이 설레는 것이다. 아마 아직도 큰딸이 아기 같다는 생각을 놓지 못해서 그런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