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익숙한 것에 대하여

행복한 까시 2007. 5. 19. 12:49
 

 얼마전 회사를 옮기면서 하루도 쉬지 않고 다음 직장으로 출근하였다. 며칠 쉴 수도 있었지만 전직장에서 여러 가지 가슴 아픈 일들을 잊기 위해 쉬는 것을 포기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일에 파묻히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에 매달렸다. 처음이라 그리 일은 많지 않았지만 일을 만들면서 하였다. 일이란 만들면 많이 발생하는 것이 또한 일의 속성이다.


 며칠을 그런대로 전직장의 일을 잊고 지냈다. 하지만 잊는다는 것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전직장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전화가 오면 직장 일들이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전직장에서 있었던 즐거운 기억, 괴로운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래도 그리 나쁜 기억은 없었지만 마지막에 일처리가 그동안의 좋은 기억들을 반감시키며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내 나름대로는 전에 일하던 회사에서 정이 그리 많이 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마음속의 감성은 속일 수 없는 것 같다. 마음 한쪽에서는 빨리 잊으라고 주문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직 전직장의 관계가 청산되지 않았으니 시간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도 문득 생각이 난다. “지금 이 시간쯤이면 출근해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겠지?” “전에는 지금이시간 쯤이면 차를 몰고 어디를 지나고 있을 꺼야. 그때는 모방송국의 이숙영이라는 디제이가 김미남씨와 함께 영어한마디 코너를 진행하고 있었지” “오늘은 월요일이니까 재테크 코너도 있을 꺼야” “그리고 지금은 임원에게 결재를 가야하는 시간인데.” 등등 과거 몇 년간 습관이 머리 속에서 맴돈다. 그래서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라고 하는 것 같다.


 아직도 옮긴 직장의 내자리는 꼭 남의 자리 같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다행이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모두 좋고, 일하는 여건도 좋다. 그리고 신설된 부서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새로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텃새 같은 것도 없다. 하지만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다. 가끔 일에 열중하다가 정신을 차리면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 것이지 하며, 문득 정신이 번쩍 드는 경우도 있다. 아참 내가 직장을 옮겼지 하며 머리를 긁적이곤 한다.


 나를 비롯하여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변화를 추구해야 살아갈 수 있다고 외치지만 그래도 마음속에서는 익숙함을 좋아하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인 것이다. 특히 우리 부모님만 보아도 시골을 떠나서는 못산다고 하시는 것만 보아도 익숙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이번에 동료들도 이직을 하는데에 있어 지역을 많이 고려하는 것만 보아도 익숙함을 꽤나 중요시하는 것 같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 익숙함이라는 것도 별것이 아닌 것 같다. 직장을 옮겨서도 한 일년 정도 지나면 금방 익숙해 진다. 단지 그 시간을 견디기가 약간 힘든 것 뿐이지 그 시간만 지나면 그 익숙함에 또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익숙함이란 자기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에 따라 익숙해지는 시간이 단축되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놓여져 있을 때 과거의 습관이나 환경을 얼마나 빨리 잊고 적응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익숙함을 생각하며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이 그 익숙함을 빨리 청산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그 익숙함을 빨리 청산하는 것도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일년 후에는 지금의 직장이 익숙함이 되어 내 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이 작은 고민은 이 글이 없다면 아마도 과거의 일로 지워질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