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밥 한 그릇이 주는 의미

행복한 까시 2007. 1. 24. 17:03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윤기가 흐르는 하얀 쌀밥을 대할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밥을 충분히 먹지 못했던 과거의 기억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기억은 내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 보다는 부모님, 형과 누나들이 입버릇처럼 그들의 어린시절에 늘 부족한 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밥은 단순히 먹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마도 우리는 쌀이나 잡곡으로 만들어진 밥이 주식으로 하는 민족이라 그럴 것이다. 밥은 우리의 인생, 생활, 문화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밥 한 그릇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시대가 바뀌어도 이러한 밥에 대한 가치나 의미는 퇴색이 될지 몰라도 그리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마주치면  “밥 먹었니?”,  “식사 하셨어요?”,  “진지 잡수셨어요”  등으로 인사하는 것만 보아도 밥이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집을 떠나 있는 아들이나 딸들에게도 부모님들은 늘 하시는 말씀이 “밥은 먹고 댕기냐?”, “끼니 거르지 말고 밥 꼭 챙겨먹어라”, “밥 많이 먹어라” 등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표현은 밥으로 대신하지만 부모님의 가지고 있는 사랑의 전부를 한 그릇의 밥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들은 아들이 군대에 가거나 먼 길을 떠나면 부뚜막에 밥을 퍼서 올려놓았다. 이것은 자식들이 밥을 굶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에도 아침저녁으로 따뜻한 밥을 해서 올리는 것만 보아도 밥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가 있다.


 밥은 또한 접대의 의미도 있다. 옛날에는 길손들에게 밥 한상을 차려서 대접하기도 했다. 또한 밥 먹는 시간에 친구의 집을 방문해도 숟가락 하나만 놓으면 자연스럽게 같이 밥을 먹곤 했다. 그래서 예전의 어머니들은 늘 넉넉하게 밥을 했다. 예고 없이 불시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접대하기 위해 밥을 넉넉하게 해두었던 것이다. 그 시절에는 손님들이 오면 맛난 반찬을 했기 때문에 손님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식사시간에 남의 집을 방문하면 실례가 될 정도로 세상은 많이 변했다. 밥이 접대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어른들이 돌아가셨을 때 차리는 사자밥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실체도 없는 저승사자에게도 하얀 쌀밥으로 대접하는 것을 보면 밥을 대하는 조상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어린 시절 늘 밥상에는 쌀밥이 부족했다. 부족한 쌀밥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밥에는 콩, 수수, 조, 보리들로 채워졌다. 보리는 싫어했지만 나머지 잡곡은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그나마 그 시절에는 이웃사람들 중에는 잡곡밥도 배불리 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잡곡밥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그나마 형이나 누나들이 어린 시절에는 밥이 부족했던 것 같았다. 누나들은 가끔 옛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한다. 밥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머니와 누나들 둘은 밥을 따로 푸지 않고, 양재기라는 양은그릇에 같이 퍼서 먹었다고 한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 적게 먹었다고 한다. 누나들은 젖먹이를 달고 있는 어머니를 위해 밥을 양보했고, 어머니는 누나들을 위해 밥을 양보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매일 밥이 부족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밥이 남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싸해지고, 진한 무엇인가가 가슴을 쓸어내리는 느낌이 든다.     


 하루는 어머니가 산에 나물을 뜯으러 갔다 오셨다고 한다. 그날따라 밥이 유난히 적었다고 했다. 큰누나와 작은 누나 어머니 셋이서 함께 밥을 물에 말아 먹는데, 한사람이 먹어도 적은 양이라고 했다. 큰누나는 밥을 한두 숟가락 뜨더니 수저를 놓으며 아까 먹었다고 둘러댔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도 누나는 조숙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동생들 젖을 먹여야 하기 때문에 어머니가 많이 드셔야 된다는 것을 눈치 챈 것 같다. 열 살이 조금 넘은 나이에 그 생각을 한 것을 보면 생활이 궁핍할수록 철이 더 드는 것 같다.      


 요즘은 밥도 진화를 했다. 전기밥솥이 나오고, 전기밥솥의 기능도 쌀밥은 물론 잡곡밥, 발아 현미밥도 지을 수 있게 개발되었다. 그리고 밥솥의 소재도 알루미늄에서 무쇠 심지어는 돌까지 등장했다. 모두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해서 진화된 것이다. 최근에는 즉석밥까지 나와서 전자렌지에 데우거나 끓는 물에 넣어두기만 하면 새로 한 밥과 같이 되는 시대이다. 즉석밥의 종류도 쌀밥, 잡곡밥, 현미밥 등으로 다양하다.    


 이러한 조상 대대로 내려온 밥도 이제는 위협을 받는 것 같다. 쌀 소비량이 갈수록 감소한다고 한다. 밥보다는 가공식품이나 패스트푸드를 많이 먹기 때문이다. 이러한 식사 문화의 변화로 건강도 위협받고 있다. 그리고 가족끼리 오손 도손 둘러앉아서 정겹게 밥을 먹는 문화도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밥으로 인해서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가족간의 정도 점점 희석되고 있다. 오늘따라 대가족이 함께 먹던 따뜻한 밥상이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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