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늦가을 도서관에서

행복한 까시 2006. 11. 19. 22:05

  늦가을 정취가 마음을 설레게 하는 나른한 오후에 딸아이의 책을 빌리기 위해 기적의 도서관을 찾았다. 전에도 몇 번 갔었지만 오늘은 도서관 분위기가 책을 읽기에 아주 풍경을 제공하고 있다. 넓은 창밖으로 보이는 단풍든 나무들이며, 잘 가꿔진 정원이 주위 풍경과 어우러져 늦가을의 느낌을 풍성하게 전해 주었다. 그 풍경에 취해 마치 철학자나 사색가가 된 것처럼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동시에 도서관에 대한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과거 우리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 도서관을 책을 빌려보는 장소가 아니라 시험공부를 하는 장소였었다. 시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에 가려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가야 겨우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학원이나 과외가 금지된 시절 집에서는 집중이 잘 안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도서관으로 몰려들었다. 그 당시 도서관은 무척 지저분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어둠침침하고, 사람들의 냄새가 많이 나서 호흡하기도 힘들며, 식당에서 파는 음식은 값이 싼 이유도 있지만 사람들이 먹기에는 좀 힘든 수준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돌이라도 씹어먹을 수 있는 시절이었기에 학생들은 맛있게 먹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한참 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던 학창시절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화장실에 가면 성에 관한 삽화가 많이 그려져 있었고, 성에 대한 짤막한 글귀들이 화장실 벽면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아마도 성에 대한 호기심이나 욕구들을 그런 방법으로 해소한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시험공부를 하러 도서관에 가면 왜이리 다른 서적들이 눈에 들어오는지 야속하기만 했다.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데, 소설책에 유혹 당해서 시험공부는 하나도 못하고 돌아온 기억도 있다. 그 때 읽은 소설은 왜이리 재미있는지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울 뿐이었다. 그래도 부모님은 열심히 공부하고 왔다고 대견해 하셨는데, 그럴 때는 마치 중죄라도 지은 죄인 같은 심정이었다. 나중에 우리 딸들도 나처럼 공부하러 가서 소설책이나 읽고 올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고등학교 내에도 독서실이 있었다. 학교 학생들을 독서실에 몰아 넣고 집중적으로 공부시키기 위해 만든 것 같다. 시험을 볼 때마다 받은 등수로 몇 명씩 잘라서 도서관에 들여보냈다. 학생들의 경쟁을 유발시키기 위해 만든 제도였는데,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학생들에게 위화감을 조성시킨다는 이유로 학부모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래도 학교에서는 계속 이 제도를 시행하였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도서관은 학생들의 공부방이었다. 대학교 도서관도 책을 빌려 읽는 기능보다 고시 공부하는 학생들, 입사시험 준비하는 학생들, 중간 고사나 기말고사 시험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장소 제공 기능이 가장 컸다. 그래도 대학교 도서관은 겨울에는 난방이 잘 되었고, 여름에는 에어콘이 시원하게 나와서 공부하기에 아주 적합한 공간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잠이 많던 나에게 도서관은 약간의 낮잠을 잘 수 있는 공간도 제공해 주었다. 공부를 하다가 잠깐 잠을 자고 나면 집중도 잘 되어 많은 공부를 짧은 시간에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부하다가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서 마시는 자판기 커피 맛은 유명 커피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것 보다 훨씬 맛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커피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도서관에 대한 은어도 또한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도자기 또는 기둥서방으로 불리는 도서관에서 여자친구 자리 잡아 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남의 자리에 앉아서 공부하는 학생들로 주인이 자리에 오면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며 공부하는 사람은 메뚜기라고 불려졌다. 주로 나같이 학교에 늦게 오는 게으른 학생들이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메뚜기처럼 옮겨다니며 공부를 하였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집사람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이들은 책을 읽고 있다. 깨끗한 도서관 내부에 안락한 의자들이 책읽기에 편하다. 내부도 방같이 꾸며 마치 안방에서 책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든다. 게다가 창도 넓어 답답한 느낌도 없다. 조명도 밖에서 들어오는 자연 채광과 내부의 불빛이 조화를 이뤄 책읽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아주 어린아이들을 위하여 별도로 엄마들이 책을 읽어줄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 놓았다. 그리고 유아들을 위한 별도의 방이 마련되어 있어 산만한 아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접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또한 컴퓨터를 이용하여 동화를 들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 놓았다. 나는 그곳에서 여러 수필가가 쓴 수필들을 읽었다. 수필을 읽으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과 문학적 요소, 자연현상이나 사물에 대해 사색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간접적으로 체험하였다.
 
  도서관에는 많은 어린이들이 책을 읽고 있다. 부모의 강요에 의해 온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책이 좋아서 온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지금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아이들은 사고력이 많이 향상될 것으로 생각된다. 좋은 책을 읽는 다는 것은 훌륭한 스승과 교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이 생각이 난다. 그 친구들은 다들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연락이 되는 친구도 있고, 안 되는 친구도 있다. 연락이 되는 친구들은 지금 사회에서 제 역할을 충분히 잘 하고 있다. 아마 연락이 되지 않는 친구들도 사회에서 잘나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한 것들이 헛되지 않게 말이다.  

 

'내마음의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익숙한 것에 대하여  (0) 2007.05.19
밥 한 그릇이 주는 의미  (0) 2007.01.24
내마음의 수필  (0) 2006.11.12
10년만의 동네 한바퀴  (0) 2006.07.10
구세대라고 느낄때  (0) 2006.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