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10년만의 동네 한바퀴

행복한 까시 2006. 7. 10. 13:16
 

 지금 사는 동네에서 10년을 넘게 살았지만, 지금까지 동네 한바퀴를 돌아본 일이 없었다. 다들 의아해 하겠지만 이것이 나를 비롯한 요즘 젊은이들의 현실인 것 같다. 여러 가지 핑계를 대자면 끝이 없겠지만, 그래도 이런 저런 이유가 많았다. 지금 사는 동네에 총각 때 이사 와서 바로 결혼하고 아이들 낳고 살다 보니 여가가 없었다. 게다가 아이들도 어리다 보니 어디 한번 마음 놓고 동네를 산책할 여유도 없었다. 고작 어린 아이들 데리고 나와서 논다는 것이 아파트 주위에서 배회하는 것들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회사는 어떠했는가? 해도 해도 끝도 없이 쌓이고 밀려드는 일이 나의 숨통을 조였다. 그러니 동네를 산책할 정신적인 여유가 더더욱 없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늦깍이로 공부 좀 하니 시간이 더 부족했다. 정말로 시간이 부족해서 동네를 산책 못했다는 것은 명분이 있는 변명이고, 실제로는 정신적인 여유가 없어 동네를 한바퀴 둘러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솔직한 변명인 것 같다.


 요즘은 삶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발버둥치며 살아왔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어떻게 하든 밥 세끼 먹는 것은 마찬가지 인데 말이다. 더 잘사는 사람이건 못사는 사람이건 밥 먹고 잠자고, 아이들 키우는 것은 거의 비슷한데 말이다. 우리가 사는 것은 먹고 잠자고 종족을 보전하면 되는데, 점점 삶이 팍팍해져가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본다.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단순히 먹고 종족만 보전하기 위해서는 그냥 먹거리에 만족하면서 살면 되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잘 살겠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해 오늘도 발버둥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최근들어 주 5일제 근무를 시행하여 여유가 좀 생긴다. 저녁을 먹고 아내, 딸 둘과 함께 넷이서 길을 나섰다. 그야말로 10년만의 동네한바퀴 이다. 아내의 몸이 안 좋아진 후로 아내와의 시간을 많이 가지니 예전보다 가정에서의 행복감을 더 느끼는 것 같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아파트 옆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오솔길 좌측은 아파트들이 자리하고 있고, 오른쪽은 소나무가 많은 야산이다. 오솔길에 들어서자마자 솔향기와 풀냄새가 우리 가족을 반기고 있다. 시원한 공기와 신선한 자연의 냄새가 가슴에 낀 먼지를 모두 털어내는 느낌이다. 게다가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며 여유 있게 걸으니 마음이 편안해 진다. 올라가는 곳곳에 꽃들이 피어 있다. 가장 흔한 꽃이 원추리 꽃이고, 개망초 꽃도 하얗게 피어 있으며, 강아지풀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한참을 더 올라가니 작은 밭들이 눈에 띈다. 아마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텃밭을 일구어 작물을 재배하는 것 같다. 그 작물들은 마치 백과사전에 나오는 농작물을 모두 모아 놓은 것 같이 종류도 다양하다. 가장 흔한 것이 상추, 쑥갓, 고추, 파, 호박, 오이 등이다. 아이들에게 호박이 맺힌 열매와 오이가 달린 오이 넝쿨을 보여주니 마냥 신기해한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니 더덕과 도라지도 밭에서 재배하고 있었다. 도라지꽃도 많이 피어 있으니 예쁘다. 보라색 도라지꽃 사이사이에 핀 하얀 도라지꽃도 나름대로 조화를 이뤄 멋스러움을 주고 있다. 도라지꽃을 보고 있으니 어린시절 도라지 꽃망울을 터뜨리던 생각이 난다.


 좀더 올라가니 옥수수, 고구마, 토란, 방울토마토, 근대, 울타리콩 등이 심어져 있다. 옥수수는 수염이 막 나기 시작한다. 얼마 안 있으면 옥수가가 여물 것 같다. 울타리 콩도 요즘은 시골에서 보기 어려운 콩이다. 예전에 이 콩으로 콩잎 장아치도 만들어 먹고 밥에 쪄서도 먹은 기억이 난다. 이처럼 갖가지 농작물을 보면서 걷는 길은 마치 시골 한가운데를 걷는 느낌이다. 도시 한 가운데도 이런 길이 있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다. 한쪽은 아파트가 있고, 한쪽은 이러한 농작물이 있어 도시와 시골이 적절히 대비되는 오솔길이다. 사람들이 운동하러 많이 나와서 걷기 운동을 한다. 나이가 든 부부들은 다정하게 산책을 하며 지나간다. 이 오솔길이 끝나면 도시 한복판과 같은 길이 나온다. 각종 상가들이 죽 늘어선 전형적인 도시의 이면도로가 나온다. 어지럽게 걸린 간판들, 네온사인, 길가에 내 놓은 좌판들이 조금 전의 고요한 시골 풍경과 대비를 이룬다.


 이렇게 걷는 길은 거의 한 시간이 소요된다. 걸으면서 들꽃도 관찰하고, 농작물도 보면서 계절의 변화도 알아차린다. 역시 자연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깨끗이 청소해 주는 것 같다. 마음속이 많이 비워진 느낌이다. 예전에는 주말에 아파트 밖을 한번도 나가지 않은 적도 많았다. 즉 토요일에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 월요일 날 출근할 때 비로소 아파트 밖을 빠져 나가곤 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삶이 그러하였다. 이제야 조금씩 주위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아니 주위를 보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대수롭지 않은 동네 한바퀴가 마치 먼 곳을 여행하고 돌아온 느낌이다. 그리고 내가 사는 동네에 이런 곳이 있었다는 것이 반갑고, 정겹기만 하다. 삶에서 이런 소탈한 방법으로 동네 한바퀴를 둘러본다는 것도 행복을 느끼는 또 한 가지 방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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