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시 이야기

씁쓸한 여운을 남긴 광복절의 하루

행복한 까시 2007. 8. 16. 08:57
 

 # 태극기 게양을 강요당하다.


 이른 아침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잠결에 어렴풋이 방송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62주년 광복절입니다. 주민 여러분께서는 한분도 빠짐없이 태극기 게양에 동참해주시기바랍니다.”

 대충 이런 문구로 방송차를 동원하여 방송을 하고 있다. 마치 선거철에 선거운동하는 분위기다. 이런 문구를 계속 반복하면서 아주 큰소리로 방송을 한다. 이 소리에 잠이 깨었다. 조금 기분이 나빴다. 이번 뿐만이 아니다. 국경일마다 매번 이런 방송을 한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을텐데 이번에는 기분이 조금 그랬다.


 방송차가 지나가고 나서 조금 있다가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또 똑같은 방송을 한다.

 “오늘은 62주년 광복절입니다. 주민 여러분께서는 한분도 빠짐없이 태극기 게양에 동참해주시기바랍니다.”

 진짜로 짜증이 났다. 국기 달기를 강요한다는 것이 기분이 나빴다. 국기를 달려고 했던 마음이 오히려 달지 말까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공무원들이 국기달기 실적 경쟁을 하는 모양이다. 꼭 이런 식으로 해야하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국기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서 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애국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공무원들이 국민의 마음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사리사욕보다는 공익과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일하면 당연히 국민들이 애국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면 국기를 달지 말라고 하여도 저절로 달게 될 것이다. 나라가 자랑스러우면 국기는 저절로 게양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국기 달기를 강요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켠이 씁쓸하다. 얼마나 사람들이 국기를 게양하지 않으면 저렇게 방송까지 하면서 국기를 달아 달라고 외치는가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과 함께 국기를 게양했지만 영 뒷맛이 개운치 않다.

 


 # 마케팅에 이용 당하는 8.15


 저녁나절 심심해서 텔레비전을 틀었다. 사실 텔레비전은 잘 보지 않는데, 오후에는 심심해서 텔레비전 리모콘에 손이 갔다. 채널을 검색하다가 모 홈쇼핑에서 못볼 것을 보았다.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C사 홈쇼핑에서 L사 한방화장품을 팔고 있었다. “8.15 피부해방” 이라는 광고 문구를 이용하여 화장품을 팔고 있었다. 화려하게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나와서 웃고 즐기며 화장품을 소개하는데 기분이 나빴다. 우리의 광복절을 마케팅에 이용한다는 것이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몰라도 이건 분명 잘못된 마케팅이다.


 나라를 되�으려고 무수한 사람들이 피를 흘렸으며, 희생했는데, 그리고 오늘이 우리 민족이 그토록 기다리던 독립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런 기념일을 마케팅에 이용한다는 것이 도대체 생각이 있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기획자도 그렇고,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도 그렇고, 그것을 방송하는 홈쇼핑회사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피부를 아름답게 하는 화장품을 광복절과 비유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오늘 같은 날은 오히려 화장도 하지 않고, 수수하게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인가? 그것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 유공자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마음일 것이다.


 너무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만 많이 팔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태가 쓸씁한 여운을 남긴다. 텔레비전을 꺼 버렸다. 꺼진 텔레비전 화면에 환하게 웃으면서 화장품을 소개하던 쇼호스트의 얼굴이 기분나쁘게 아른거린다.        

 

 

  # 이유 없는 분노


 언제부터 인가 무기력해졌다. 일손도 잡히지 않는다. 일도 하기가 싫다. 계속 일을 뒤로 미루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출근해서 하루종일 애꿎은 컴퓨터만 못살게 군다. 목표도 방향도 잃은채 인터넷만 헤집고 다닌다. 집에 와서도 의욕이 하나도 없다. 예전 같으면 없는 시간을 쪼개서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그랬는데, 그것도 손 놓은 지가 한참되었다. 그냥 아무 목적 없이 하루하루만 보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불만이 많아졌다. 일에 불만이라기 보다는 처우에 불만이 많다. 일을 시작할 때 해주기로 한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더욱 일하기가 싫어 진다. 일도 그렇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겠고, 조만간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머리가 복잡해 진다. 이렇게 하루 하루를 의미 없이 흘려 보내는 내가 너무 싫다. 그래서인지 아무 이유도 없이 하루 종일 간간히 짜증만 난다.


 이렇게 해서 광복절 하루가 지나갔다. 위의 두 사건이 나의 마음을 씁쓸하게 했는지, 아니면 내 마음 깊은 곳에 깔려 있는 마음 때문인지 몰라도 그리 밝은 하루는 아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얽혀서 씁쓸한 감정이 내 마음 한 구석을 점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