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시 이야기

아프다는 건 성숙해 가는 과정이야.

행복한 까시 2007. 8. 29. 11:14
 

 어제는 감기로 하루 종일 앓았다. 감기의 직접적인 원인을 밝히자면 사무실의 에어컨일 것이다. 하지만 이 원인은 지극히 일상적인 원인일 뿐 마음속에 깊은 곳에 존재하는 원인은 아닌 것 같다. 아직도 마음속에서 해결되지 못한 무언가가 감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아픔으로 표출 된 것이다.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 자신이 아니던가? 병이 났을 때 이것은 바로 나을 병인지, 죽을병인지, 약을 먹어야하는지 직감적으로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사람도 나 자신 아니던가?


 그저께 저녁부터 감기에 대한 조짐이 있었다. 코에서는 쉴 새 없이 콧물을 쏟아내고 있다. 아마도 나쁜 병원균에 대항하여 방어하려고 코가 무척 애쓰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나는 떨어지는 콧물만 원망하며 애꿎은 화장지만 소비하고 있었다. 이렇게 약간 좋지 않은 몸 때문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감기에게 점령당한 것이다. 코와 목, 그리고 온몸이 몸살에 의해 점령당했다.


 아침을 먹고 나서 병원을 다녀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을 먹어야만 감기를 잠재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그냥 참아서는 낫지 않을 것 같다. 의사에게 진찰을 하니

 “목이 많이 부우셨군요? 코도 막히죠? 그리고 몸살 기운도 있고요.”

일상적인 감기 용어만 늘어놓는다.

“주사 한대 맞으시죠? 빨리 나을 수 있는데....”

 “싫어요. 그냥 약만 주세요.”

주사를 맞기가 싫어서 약만 달라고 했다. 사실 나는 주사 맞기를 제일 싫어한다. 주사뿐만 아니라 약 먹는 것 자체도 싫어한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아프기만 하면 약 잘 먹지 않는다고 종종 구박을 받곤 했다.


 약을 먹고 누웠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 동안의 정신적인 피로도 누적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시절 아플 때와 같은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심하게 아파서 누워 있으면 내 몸이 점점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조금씩 조금씩 내 몸이 커지다가 나중에는 커다란 거인처럼 내 몸이 커져 갔다. 그러다가 내 몸이 작아지고, 또다시 점점 커지는 것이 반복되었다. 아마도 몸에 열이 많아서 생기는 현상이었던 것 같다. 그 뿐이 아니었다. 아파서 누워 있으면 갖가지 아름다운 무늬들도 눈앞에 아른 거렸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무늬들이 계속 바뀌면서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그 모양들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면서 내 눈앞을 계속 아른 거렸다. 마치 컴퓨터의 화면이 정지되면서 나타나는 무늬처럼, 아니면 컴퓨터에서 CD를 넣고 음악을 들을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파노라마 문양 같은 것이다. 어릴 때는 그런 무늬에 호기심이 많았었다. 왜 저런 문양이 나타나는 것일까 하면서 속으로 혼자만 고민하곤 했는데 아직도 원인은 모른 채 풀지 못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육체적 아픔이란 것은 단순히 신체 혼자만의 아픔은 아닌 것 같다. 묘하게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 몸살이라든가 감기가 찾아온다. 정신력이 강하게 버티고 있을 때에는 이런 아픔이 찾아오지 않는 것 같다. 즉 마음과 육체는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한바탕 아프고 난 후에는 기어 다니기 시작 한다든지, 말을 시작한다든지, 앉기 시작 한다든지 새로운 육체적인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렇듯 아픔은 또 다른 성장이나 성숙을 의미한다. 아픔이 육체적으로 고통만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아프고 났더니 온 몸에 기운이 없다. 바이러스가 온 몸에 침입했다가 쫙 빠져나간 느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개운한 마음도 든다. 온갖 잡스러운 병원균들이 깨끗이 청소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요즘 방황하던 마음도 조금은 정리된 듯하다. 아픔을 통해서 어린아이가 성숙해진 것처럼 나 또한 더 성숙해진 느낌을 받는다. 말끔히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에 한 가닥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이 감정이 정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