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풍경

냇가 빨래터의 아주머니들

행복한 까시 2007. 8. 23. 10:55
 

 집사람은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다. 화창한 햇빛에 반사되어 널어 놓은 빨래는 투명하고, 선명한 옷감의 색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가족들의 옷이 나란히 걸려 있다. 걸려 있는 딸들의 옷을 보며 제법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든다. 옷의 양도 제법 많고, 옷의 크기도 매 계절마다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가족들의 옷을 세탁해서 널어 놓은 빨래를 보고 있노라니 내마음도 깨끗해지며 시골의 빨래터가 생각이 난다.


  어린시절 냇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자연적으로 웅덩이가 생겨서 물의 양이 많은 곳에 빨래터를 만들었다. 커다랗고 넓적한 돌맹이를 비스듬히 놓아서 빨래하기 편하도록 만들었다. 빨래터에는 이런 돌맹이가 여러 개가 있었다. 여러 개의 돌맹이가 있어도 빨래가 잘 되는 돌맹이가 따로 있었다. 좋은 돌맹이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모습을 모면 사람들이란 아주 사소한 것도 경쟁을 벌이는 특이한 동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경쟁은 과거에서 지금까지 아마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어린시절 놀러 다니느라 들판을 헤메고 다니다 보면 냇가에는 두 세명의 동네 아주머니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가끔 어머니도 그 중에 있을 때도 있었고, 어머니가 바쁠 때에는 누나가 빨래터에 나오기도 하였다. 어머니가 혼자 빨래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면 신나게 달려가서 빨래터 옆에서 놀았다. 송사리를 잡기도 하고, 돌맹이 아래의 가재도 잡고, 민물 새우도 잡고 놀았다. 그래서 빨래터에서 서식하는 민물 어류는 늘 아이들에게 수난을 당했다. 그렇게 수난을 당하면서도 언제나 가 보면 물고기들이 많이 놀고 있었다.


 요즘 같은 더운 날에는 빨래터 근처에서 수영을 했다. 심심하면 빨래하는 아주머니들에게 물도 튀기며 장난을 하기도 했다. 날씨가 워낙 더우니 아주머니들도 겉으로는 화를 내시면서도 그냥 눈감아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빨래를 하면서 더위를 식히는 효과도 있었다. 어린 여자 애들도 빨래하러 나온곤 했는데, 빨래를 잘하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칭찬을 빨래를 더 많이 하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빨래터는 남자들의 접근이 어려운 남성 금지구역이었다. 누가 법으로 정해 놓은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마을의 불문율 이었다. 어린 남자애들은 어머니나 누나를 따라서 갈 수 있었지만 어느정도 나이가 들면 갈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남자들만 사는 집이나 남자 혼자 사는 사람들은 저녁때 남몰래 빨래를 하곤 했다. 지금은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남자들은 빨래를 하면 안된다는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빨래터에서 아주머니들이 좋아하는 것은 이야기였다. 동네의 소식이나 소문이 전파되는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빨래터를 통해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로 전파된다. 또한 시어머니나 남편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곳도 이곳이었다. 그래서 여자들이 빨래를 깨끗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빨래 방망이를 두드렸는지도 모르겠다. 과학적으로는 빨래 방망이를 두드리는 것이 세탁효과가 더 높다는 것을 어렴풋이 들은 기억도 있다.


 가끔 이러한 수다 때문에 아주머니들간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이 싸움구경이라고 했다. 특히 빨래터에서 일어나는 싸움은 구경할만 했다. 싸우는 당사자들은 심장이 터질듯한 분노가 일어나겠지만 구경하는 아이들은 웃음이 나와서 어쩔줄을 몰랐다. 서로 머리채를 잡고 물에 빠뜨리는 모습은 처절하기만 했다. 구경을 하면서도 꼭 저렇게 싸워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기도 하였다. 이런 싸움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두 물에 빠져서 뜯어 말려야만 가까스로 싸움이 끝났다.    


 이제는 냇가의 빨래터도 다 사라졌다. 냇가도 오염이 되어 빨래를 할 수가 없다. 오염이 되지 않았더라도 성능좋은 세탁기가 온 세상에 널렸는데, 누가 힘들여 빨래를 하겠는가? 더군다나 요즘은 빨래가 건조되어 나오는 세탁기까지 나오지 않았던가?


 빨래터에서 비누거품이 만들어낸 방울이 냇가로 퍼져나가면서 터진다. 그 모습 사이로 간간히 빨래 방망이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동네 아주머니들의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시냇물 흐리는 소리와 섞여 들린다. 그 소리들 중에 어머니 목소리도 조금씩 들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