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풍경

밤이 영글어 가는 풍경

행복한 까시 2007. 9. 14. 14:37
 

 어제 퇴근해 보니 식탁 위에 삶은 밤이 놓여 있었다. 시장에 갔더니 햇밤이 맛있어 보여 사왔다고 한다. 알이 굵지는 않았지만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기대했던 것보다 맛이 썩 좋지는 않았다. 밤 한 톨을 까서 입에 털어 넣으니 고소한 맛과 함께 밤에 얽힌 몇 가지 추억들이 머리를 스친다.


 시골 마을의 가을을 먹을 것으로 넘쳐난다. 간식거리가 귀했던 시절 가을은 아이들에게 많은 먹거리를 제공하는 계절이었다. 봄에 핀 밤꽃이 열매를 맺어 여름을 지나면서 커다란 밤송이를 만들어 낸다. 특히 가을의 초입에 밤나무에서 여물어가는 밤은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군침을 삼키게 하였다.


 아이들은 가시 밤송이 속에 든 밤이 영글었는지 본능적으로 알아내었다. 밤송이가 통통해 지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밤을 땄다. 밤을 따서 가시에 찔려가며 힘들게 껍질을 벗기면 하얀 알밤이 나왔다. 이것을 풋밤이라고 하는데 한 입 베어 물어 천천히 씹으면 살이 연하고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이것을 먹기 위하여 손을 가시에 찔려 피가 나고 상처가 나기도 하였다. 밤송이의 겉껍질을 벗겼다고 해서 다 된 것은 아니다. 속껍질이 또 남아 있었다. 밤이 완전히 익기 전의 속껍질은 탄닌 성분이 많아서 떫은맛이 많이 났다. 그 뿐만 아니다. 그 속껍질이 옷에 묻으면 밤물이 갈색으로 들어 지워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들의 가을 옷은 늘 갈색 얼룩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밤을 따 먹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밤나무도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밤 가시를 달아 놓았다. 밤알이 영글기 전에 열매가 누군가의 의해 따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시를 달아 놓은 것이다. 그 가시를 이용하여 덜 익은 밤을 따는 사람은 가시에 찔리도록 응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에 순리에 역행하면 그 만큼 가시에 찔리는 상처를 대가로 지불해야 했던 것이었다.


 밤이 완전히 익어 밤송이가 누렇게 변하면서 벌어지면 알밤을 쏟아내었다. 그런 밤나무 밑에 가면 갈색의 알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부지런하거나 욕심이 많은 밤나무 주인은 미리 밤을 털었지만, 바쁘거나 마음씨가 좋은 주인들은 아이들이 밤을 주워가도 모른체 해 주었다. 아이들은 그런 넉넉한 품성의 어른들을 좋아했다. 밤나무가 많아 학교에 오고가면서도 밤을 주웠다. 가을이 되면 다람쥐처럼 밤을 주워 모으는 것이 재미나고 신이 났었다. 바구니에 밤이 차오르는 것을 보면서 뿌듯한 마음을 갖기도 하였다.


 잘 익은 알밤은 쪄서 먹는 것도 맛있지만 화로 불에 구워먹는 군밤이 더 맛있다. 밤을 구울 때 껍질을 통째로 구우면 밤이 튀어 올라 눈알이 빠지니 조심해야 한다고 어른들은 신신 당부를 하였다. 그 당시는 겁이 나서 밤 껍질을 조금 벗겨내고 구웠다. 밤에 대한 이야기는 전래 동화에도 많이 등장한다. 화로에 묻어 놓은 밤이 호랑이 눈을 뺀다는 이야기로 말이다. 까맣게 타버린 밤 껍질을 입술에 검게 묻혀가며 먹는 밤 맛은 고소하고 달콤하기만 했다. 서로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 뜨거운 것을 경쟁적으로 먹어 치웠다.


 한번은 동생과 함께 밤을 주우러 갔다가 큰일을 당할 뻔하기도 하였다. 동생이 커다란 말벌에 쏘인 것이다. 어린시절 시골에는 벌과 뱀이 아이들을 위협하는 존재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인사를 할 때 “벌! 뱀!”이라는 구호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벌과 뱀을 조심하라는 강한 메시지였다. 벌에 쏘이자 동생은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울었다. 바로 눈 옆을 쏘인 것이다. 벌은 계속 날라 다니고 다급한 마음에 동생을 업고 집으로 달렸다.


 집에 와서 동생을 보니 벌써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동생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불호령을 내렸다. 워낙 잘못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야단을 맞기만 했다. 어머니의 야단은 그런대로 견딜 수가 있었지만 아버지의 야단이 걱정이 되었다. 평상시에 워낙 엄한 분이라 하루 종일 아버지에게 야단맞을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되어 밥맛도 없었다. 다행이 아버지는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동생의 얼굴은 점점 부어올랐다. 다음날 일어나니 얼굴이 두 배가 되어 있었다. 차마 얼굴을 보아 줄 수가 없었다. 눈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어올랐고, 얼굴은 부어서 피부가 투명하게 보였다. 마치 무나 채소 같은 것이 얼어서 투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동생의 벌에 쏘인 붓기는 한 3일이 지나서야 가라앉았다. 지금도 그때 동생이 말벌에 쏘인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고 마음속 깊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밤이 익어 가는 계절이 오면 말벌에 쏘여 부어오른 동생의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스쳐 지나간다.


 밤이 익어 가는 계절이 오니 밤을 주우러 가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밤 줍는 체험을 한다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자연에서 먹거리를 얻는다는 것을 보여주면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밤 줍는 체험 자체가 아이들에게 흥미도 있을 것이다. 이번 추석이나 돌아오는 주말에는 밤 줍는 곳으로 가을 여행을 떠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