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 이야기

우리집 큰딸의 라면 사랑 이야기

행복한 까시 2007. 9. 23. 06:26
 

 보통의 아이들처럼, 내가 어렸을 때처럼 우리 큰딸은 라면을 너무 좋아한다. 자다가도 라면 먹으라고 하면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한다. 아마도 라면 속의 스프가 사람들의 입맛을 당기게하는 적절한 양념 배합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맛의 유혹과 저렴한 가격 때문에 대중들에게 인기는 식을줄을 모른다. 한때 웰빙 열풍 때문에 잠시 위기를 맞이 했지만 지금도 분식짐에서 라면이 잘 팔리는 것을 보면 아직도 그 인기는 식지 않은 모양이다.


 어린시절 나도 라면 애호가 중의 한 사람 이었다. 라면에 스프를 섞어서 날것으로 먹기도 하고, 불에 구워서 먹기도 하였다. 그 뿐만 아니다. 라면스프로 밥을 비벼 먹기도 하였고, 라면이 모자라면 국수를 섞어서 삶아 먹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집에서 칼국수를 하여도 라면 스프를 넣어서 먹기도 하였다. 이런 것을 보면 라면 스프의 맛이 사람들을 잡아 당기는 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장해서는 라면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어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지금도 집에 밥이나 반찬이 없어서 먹을 것이 마땅치 않을 때에는 가끔 먹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맛있지는 않다. 좋지 않다는 생각이 뇌에 잠재해 있어 입맛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식사 대용으로 먹기는 하지만 그리 즐겁게 먹는 편은 아니다.


 우리 큰 딸은 라면의 희소성 때문에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몸에 좋지 않다고, 자주 끓여주지 않으니 더 먹고 싶은 것이다. 아직도 아내가 큰 딸과의 협상카드로 라면을 제시하면 웬만한 것은 다 해결되니 라면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큰 딸의 분위기에 휩쓸려 작은 딸까지도 라면 사랑이 애절하기만 하다.


 며칠 전에 큰 딸이 라면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일기를 썼다. 라면을 먹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 일기 내용에 구구절절히 표현되어 있다. 나는 인간의 속마음이 너무 깊게 파헤쳐져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깊이 들어간 인간의 심리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셨다. 집에 돌아온 딸은 어깨를 으쓱해 하며 개선 장군처럼 자랑을 한다. 일기를 잘 써서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 한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에 기가 사는가 보다. 하긴 어른들도 칭찬을 받으면 기가 살아나는데, 아이들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올해 초등 3학년인 우리 큰딸의 라면에 대한 애절한 이야기를 펼쳐 본다.  

        


                    

                      라면                                                       2007년 9월 20일


 

오늘 저녁 나는 이미 라면 먹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먹으려고 엄마가 주무시는데 잠을 깨웠다. 너무너무 무안하고 창피해서 고개를 푹숙이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엄마께 말했다.

 

 “저, 엄마, 배고파요.”

 

 엄마께서 말씀하셨다.

 

 “넌 참을성도 없니?”

 

나는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꾹 참고 라면을 생각하였다. 라면이 보글보글 끓는 것만 생각해도 군침이 돌고 가슴이 설레였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저녁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내동생이 쿨쿨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동생과 같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먼저 먹기로 결심하였다.

 

왜냐하면 나는 공부를 하고 있었고, 또 승진이가 얄미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라면 한 숟가락을 떴다. 무척 맛있었다. 다음에 또 먹고 싶다.


 

 라면을 빨리 먹고 싶어하는 심리가 곳곳에 나타나 있다. 라면을 먹기 위한 기다림이 얼마나 지루한지 그 심정이 애절하기만 하다. 엄마의 구박에도 오로지 라면 생각으로 일관하는 큰딸에게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고 웃음이 나온다. 동생이 잠을 자서 라면을 빨리 먹지 못한다는 우려와 걱정이 엿보인다. 라면을 먼저 먹기 위해 명분을 만들어 내는 큰 딸아이는 정치인 못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