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 이야기

할머니 오시던 날

행복한 까시 2007. 10. 5. 11:07
 

 며칠 전에 장모님이 오셨다. 벌써 두 딸들은 며칠 전부터 할머니가 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엄마 이제 두 밤만 자면 할머니 오시지?”

 “야 신난다! 이제 내일 할머니 오신다.”

 두 딸들이 번갈아 벌써 며칠째 할머니 이야기만 한다. 아직 딸들이 어려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순수한 마음이 남아있는 것 같다.


 아내는 딸들이 외할머니만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 내게 눈치가 보이는가 보다. 아이들에게 조용히 타이른다.

 “야 너희들 너무 외할머니, 외할머니 하고 외치고 다니면 아빠가 섭섭해 한다.”

 “시골 할머니 오실 때에도 외할머니 오실 때처럼 해야 한다.”

 하면서 두 딸들에게 은근히 압력을 넣는다. 그러면서도 아내는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이다. 아내는 아니라고 하지만 얼굴에 다 쓰여 있다. 나한테 매일 엄마만 찾는다고 놀리지만, 아내 또한 마찬가지이다. 가끔 나에게 놀린 죄가 있어서 어머니가 오신다는 것이 좋으면서도 맘껏 표현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내 얼굴만 보아도 다 알 수가 있다.


 우리 딸들이 할머니가 오시는 것을 좋아하는 속셈이 따로 있다. 먼저 할머니는 딸들의 응석을 모두 받아 준다. 과거의 내가 할머니에게 했던 것처럼 딸들은 응석을 부릴 때가 있어서 좋은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할머니가 계시면 할머니 핑계를 대고 공부를 조금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할머니가 계시면 아내의 공부에 대한 관심이 조금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할머니가 계시면 아내와 내가 딸들에게 화를 내거나 야단칠 수 없다는 것을 딸들은 잘 알고 있다. 할머니가 자신들의 방패막이가 되어 준다는 사실을 너무나 좋아하는 것이다. 할머니가 계신 동안만이라도 할머니를 방패삼아 엄마 아빠의 권위에 도전해 보고 싶은 얄팍한 계산이 깔린 것이다. 그렇다고 딸들이 대드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의 권위를 적당히 활용하여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드디어 할머니가 오시는 날이 밝았다.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집안이 소란스럽다. 우리 부부는 휴일이라 늦잠 좀 자려고 했더니 거실이 시끄럽다. 딸들의 좋은 기분을 맘껏 발산하고 있다. 아침부터 전화통에 불이 난다.

 “할머니 언제오세요? 할머니 빨리 오세요.”

 할머니에게 휴대폰을 걸어 언제 오시느냐고 재촉을 한다. 그리고 잠시 또 한 시간이 되지 않아 또 전화기를 돌리고, 똑같은 질문을 한다. 오전 중에만 꽤 여러 통화를 한다.


 할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되어 딸들을 데리고 터미널로 나갔다. 정말 오랜만의 할머니 마중이었다. 딸들의 기분도 내가 어릴 적 마을 어귀에서 친척들의 마중을 나가는 기분과 같을 것이다. 터미널로 향하는 승용차 안에서도 딸들의 기분은 최상이다. 흥겨워서 콧노래를 부르며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조금 기다리니 할머니가 타신 차가 도착한다. 직행버스의 맨 앞자리 창가 좌석에 할머니가 앉아 계신다. 아이들은 할머니하며 소리쳤지만 차안이라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차에서 내리셔서 아이들이 할머니하고 큰소리로 부르니 할머니가 깜짝 놀라신다. 우리가 마중 나온 사실을 모르셨던 것 같다. 예기치 않은 만남에 할머니는 더욱더 반가움이 크신 것 같다. 손녀딸들을 보시는 장모님 얼굴에는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행복이 가득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딸은 할머니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 학교 이야기며, 자신들의 관심사에 대해 조목조목 말씀을 드린다. 할머니는 조금 과장된 표현을 쓰시며 손녀딸의 이야기를 받아준다. 집에 도착하니 아내도 어머니에게 그 동안의 근황을 브리핑한다. 장모님 앞에서 이야기 하는 아내의 모습도 연신 즐거운 표정이다. 할머니의 등장으로 집안에 활기와 훈훈함이 넘친다. 딸들과 아내가 할머니를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는 아마도 할머니의 따스한 사랑을 받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