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 이야기

마음이 복잡할 때 "어린왕자"를 읽어 보세요.

행복한 까시 2007. 10. 25. 21:22
 

 한때는 나도 영원한 어린 왕자이기를 꿈꾸고 있었다. 그래서 별명도 자칭 어린 왕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도 하고 코메디 같은 일이었다. 아마도 대학생 시절에 어른이 되기 싫은 하나의 몸부림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최근에 “어린 왕자”를 읽었다. 집에 꼬마들이 있으니까 동화책 볼 기회도 많고, 명작 읽을 기회도 많다. 어른이 되어 동화를 읽으니 재미도 있고, 새로운 감동을 준다. 같은 노래도 듣는 나이에 따라 공감하는 정도가 다르듯이 책도 또한 읽을 때 마다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 온다. 어린 왕자는 어릴 때 읽었지만 별다른 감동을 느끼지 못했는데, 어른이 되어서 읽으니 공감하는 부분도 많고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온다. 어릴 때는 어른들의 세계를 경험해 보지 못해서 그 책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어른이 되어 두 세상을 모두 경험하고 나니 책이 머릿속에 들어 온다. 


 어릴 때 읽은 것 중에 기억나는 것은 바오밥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기장 인상 깊었다. 어릴 때 뽑아내지 않으면 나무가 커져서 별이 깨지는 일이 발생하므로 이 나무를 제거하는 어린 왕자가 하는 중요한 일과였던 걸로 기억한다. 어릴 때는 그 일이 어린 왕자가 하기에 매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왕자는 어린이 시각에서 본 어른들의 세계를 풍자한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어릴 때 읽는 감동보다 실제로 어른이 되어서 훨씬 더 많은 감동을 받고, 어른들의 세계를 어린이 입장에서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어른에 대해 가장 공감 가는 대목은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해 어른들은 이런 것에 대해 질문을 한다.

  “나이는 몇 살이지?”

“형제는 몇이래?”

“몸무게는 얼마나 나간다니?”

“그 애 아버지는 돈을 얼마나 벌지?”

 이렇게 온통 숫자에 관한 질문만 하고, 그 친구에 대해서 다 안다고 한다.


 반면에 아이들은 이런 질문을 한다.

“그 친구의 목소리는 어때?”

“그 친구가 좋아하는 놀이는 머지?”

“그 친구도 나비 채집을 하니?”

 아이들은 이렇게 순수하고 구체적인 것을 질문을 한다.


 또한 좋은 집을 이야기할 때에도 아이들은 구체적으로 표현을 한다.

“창가에 제라늄화분이 놓여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깃들이는 아름다운 장미빛 벽돌집을 보았어요”

 반면에 어른들은 단순하게 말해 버린다.

10억 짜리 집을 보았어요”

어른들은 그냥 비싼 집이면 훌륭한 집이라고 감탄을 한다는 것이다.


 아마 이것이 어른들과 아이들의 단적인 시각 차이가 아닐까 한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보는 어른들의 세계는 늘 무미 건조하고 지루한 것이고, 어른들이 보는 아이들의 세계는 자질구레하고 쓸데없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고 핀잔을 주는 것이다. 우리 어른들도 다 같이 어린 시절을 겪었으면서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까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어른들이 숫자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아이들에게  변론하자면 어른들은 기억할 것이 많으니까 간편하게 기억하기 위해 숫자를 많이 이용하는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아이들이 보는 시각과 어른들이 보는 시각은 분명히 다르다. 어른들의 세계는 아이들의 세계보다 무척이나 넓고 할일도 많다. 그래서 어릴적 순수한 것들을 모두 내버리는 것이다. 아니 어쩔 수 없이 버리는 것이라고 변명하고 싶은 사람들이 어른들이다.


  한번쯤 시간이 난다면 “어린왕자”를 읽고 어릴적 순수한 마음을 되돌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른들이 되어서 애같이 행동하면 분명 문제가 있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들의 시각으로 한번쯤 어른들과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져 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 자그마한 부분이라도 어린 왕자처럼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는 것도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