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이불속이 그리워지는 계절

행복한 까시 2007. 11. 3. 12:47
 

 아침 공기가 싸늘해 지는 것을 체온으로 느낄 수 있다. 창틀 사이로 들어온 차가운 기운이 침대로 확산되어 간다. 아이들에게도 싸늘한 기운이 전파되었는지 아이들 몸은 이불 깊숙이 파고 들어 간다. 이런 계절이 오면 아침에 눈뜨기가 힘들어 진다. 중년이 되어 잠이 줄었는가 싶었는데, 아직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싫어지는 것을 보면 타고난 게으름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은 것은 본능에 충실하라는 무언의 메시지인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시계가 없을 때에는 해가 떠야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그 생활 리듬이 내 몸속에 유전자를 통해서 전류처럼 흐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맘 때가 되면 어김없이 이불 속에서 게으름을 피고 싶은 것이다. 이불 속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유혹을 강렬히 느낄 때면 달력은 어김없이 11월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 


 어린시절 유난히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 것을 보면 나는 아침형 인간은 아닌가 보다. 밤늦게 까지는 일이나 공부를 해도 아침에 일어나서는 공부나 일이 되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머릿속이 텅 빈 것 같고,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공부든 일이든 제대로 되지 않았다. 숙제나 공부를 하다가 중단하고 내일 아침에 해야지 다짐하고, 그 다음날 아침 제대로 한 적이 거의 없다. 아침에 깨우지 않았다고 애꿎은 어머니에게 투정만 하였다.


 어린시절 아침이 되었을 때 깨우는 할머니나 어머니를 싫어 했었다. 일어나라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저승사자의 목소리와도 같았다. 단 5분만 더 자고 싶은 충동, 아니 단 1분만이라도 더 자고 싶은 충동이 뇌에서 온 몸으로 전파된다. 이러는 사이에 할머니는 이불을 개려고 이불을 당긴다. 이불이 사라진 내 몸은 찬기운이 온 몸을 감싼다. 이 찬기운이 너무도 싫었다. 그래도 일어나지 않으면 할머니는 문을 열었다. 문으로 들어오는 찬기운은 정말로 최악이다. 이 찬바람을 맞으면 아무리 지독한 잠의 유혹도 이겨낼 수가 없다. 눈을 감은채로 일어 날 수 밖에 없다.


 우리집 아이들도 요즘 일어나기 힘들어 한다.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는 아내의 목소리가 저승사자의 목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한 십여분 정도는 실갱이를 해야 겨우 눈을 감고 일어난다. 일어나서 화장실에 다녀오고 나서도 아내가 잠시라도 눈을 딴곳으로 돌리면 눈 깜짝할 사이에 아주 빠른 동작으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잠의 유혹을 한 순간에 뿌리치기가 어려운 것이다.


 작은 놈은 아예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린시절 기억 때문에 나는 이불을 걷어내는 고문을 하지 않는다. 이불을 개기 위해서 작은 놈을 침대로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다. 이불을 걷어낼 때 그 싸늘한 고문을 아이들에게 하고 싶지는 않다. 이 모습을 본 아내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신호로 눈을 흘긴다. 이런 아내의 눈을 보고도 그냥 아무일 없었다는 애써 외면해 버린다. 큰놈은 깨울 때 냉정하게 깨우지만 작은놈은 그리 심하게 깨우지를 못하겠다. 작은 놈 앞에만 서면 강했던 마음도 오뉴월 눈녹듯 녹아버린다. 이런 마음 때문에 아내의 흘기는 눈초리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니 고의로 안보려고 외면해 버리는 것이다.


 11월은 이불속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아침에 눈을 뜨려고 하면 침대와 이불이 친구하자고 유혹을 한다. 이것들이 애인이나 되는 듯 같이 있어 달라고 보챈다. 이성은 빨리 일어나라고 하는데, 감성이 말을 듯지 않는다. 악마는 더 자도 된다고, 회사 좀 늦으면 어떠냐고 유혹을 한다. 다른 쪽의 천사는 빨리 일어 나야한다고, 회사에 늦으면 큰일 난다고 긴장감을 준다. 이런 저런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다가 보면 시계 바늘은 벌써 저만큼 가 있다. 출근을 준비를 하기 위한 시간이 마지노 선에 근접해서야 겨우 잠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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