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커피, 그리고 추억 한잔

행복한 까시 2007. 12. 14. 06:37
 

 커피 한잔을 마신다. 혀끝으로 쌉쌀하고 쓴맛이 스며들어 온다. 프리마의 부드러운 맛과 설탕의 단맛도 그 뒤를 이어 혀끝을 자극하고 있다. 언제부터 커피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입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조용히 나의 삶 일부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다. 하루라도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무엇인가를 빼먹은 것처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허전하기만 하다. 커피를 마시지 않고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지루하기 그지없고, 고문 그 자체이다. 가끔 한약을 먹을 때 커피를 먹지 말라고 하면, 그 커피의 유혹을 견디기가 참 힘들다.


 커피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때의 일이다. 아버지가 어디서 커피를 구해 오셨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아물거리기는 하지만 아마도 시장에서 사 오신 것 같다. 유리병에 든 갈색의 가루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나머지 유리병 한 개에는 프리마라고 하는 분유 비슷한 것이 들어 있었다. 커피가 도착하자마자 우리 가족은 시식을 하기로 했다. 양은 냄비에 물을 담아 화롯불에 올려졌다. 한참을 있으니 화로에서 열기가 전해져 양은 냄비 가장자리에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양은 냄비는 열전달이 잘 되어 음식물을 넣어 가열하면 금방 끓는다. 이래서 성질이 급한 사람은 양은 냄비라고 하는가 보다. 변변한 커피 잔이 없던 시절 스테인레스 공기에 커피를 담아 마셨다. 그 스텐인레스 공기는 때로는 술잔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음료를 마시는 잔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아버지부터 어머니 그리고 우리들 차례대로 한잔씩 마셨다.


 쓴맛과 달콤한 맛이 조화된 그때의 커피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처음 마시는 것이라 기억에 더 오래 남은 것 같다. 커피는 맛있게 먹었으나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저녁나절에 먹은 커피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커피가 조금 진하기도 했고, 처음 커피를 마신 것이라 카페인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된 것 이었다. 밤이 되어 자리에 누웠으나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처음에는 잠이 오지 않는 이유도 몰랐다. 잠이 오지 않아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보니 잠이 오지 않는 것이 바로 커피 때문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제야 커피란 놈이 무서운 놈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은 것도 있지만, 커피를 마시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어른들의 말 때문에 커피를 마실 수가 없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시절 커피에 대한 유혹은 여전히 존재했다.


 대학 생활과 동시에 커피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지 못하던 시절 대학은 모든 것에 대한 해방이었다. 술, 담배, 옷차림, 시간, 헤어스타일 등등 고등학교 때 억압되었던 것이 한순간에 풀리는 순간 모든 질서가 파괴되는 느낌이었다. 이 때부터 자판기 커피는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도서관에서 공부나 리포트를 쓰다가 지루하면 맑은 공기를 쏘이며 한 잔의 커피를 마시곤 했다. 그 때의 커피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젊음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마시는 커피가 오래 기억이 남는 듯하다. 술을 못하는 나는 친구나 선배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서서히 친분을 쌓아나갔다. 이것이 커피가 주는 부수적인 혜택이었다.


 커피 생각만 해도 따스함과 행복감이 밀려온다. 회사에 출근해서 아침에 한잔 마시는 커피야말로 하루를 새롭게 시작하는 에너지이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커피 한잔을 마셔야 직성이 풀리고 일도 잘 된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무언가를 빼먹은 것처럼 허전하다. 이것은 분명 중독임에 틀림이 없다. 중독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것을 보면 커피에는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마력이 숨어있는 것이다.


 커피 맛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분위기 또는 환경에 따라 맛이 다르다. 그래도 일요일 아침 아내와 마시는 커피가 그래도 제일 맛있는 것 같다. 커피를 마시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 집안 돌아가는 이야기, 일주일 동안 이야기 하지 못했던 아이들 이야기,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계획을 이야기 한다. 커피를 마시며 바게트 빵이나 비스킷 한두 조각이 옆에 있어 같이 마시며 커피 맛을 한층 더 높여 준다. 배도 든든하고, 기분도 좋아진다.


고향집에 가서 부모님과 이야기하면서 마시는 커피는 포근한 맛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잠깐 졸고 난 후에 마시는 커피 한잔은 맛도 있지만 머리를 맑게 해주어 공부도 잘 된다. 그리고 또한 커피의 맛은 연인과 함께 커피숍이나 카페에 가서 마시는 것이 분위기로나 맛으로나 최고일 것이다.


 커피의 종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나는 커피의 종류도 조금밖에 모른다. 그저 제일 좋아하고 많이 마시는 커피는 속칭 다방커피라는 것이다. 그냥 커피, 설탕, 크림을 적절히 배합한 보통 커피가 가장 좋다. 하지만 커피는 종류마다 맛과 분위기가 다르다.


 먼저 카푸치노는 에스프레소 커피에 생크림을 넣어 먹는 것으로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카페오레는 우유가 들어간 커피로 아침에 바게트 빵과 곁들여 먹으면 아침식사 한 끼로 훌륭하다. 에스프레소는 진하게 추출해 작은 잔에 마시는 이탈리아 식 커피인데 향과 맛이 진해서 좋기는 한데 개인적으로는 너무 진해서 마실 수 가 없다.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은 이 커피에 거의 광적이다. 브랜드 커피는 일반적으로 많이 마시는 커피로 비오는 날 마시면 맛과 분위기가 끝내준다. 아이스커피는 더운 여름날 마시면 진짜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향과 그 시원한 맛이 좋다. 블루마운틴은 커피의 쓴맛과 신맛이 잘 어우러져 담백한 맛을 주며, 비엔나커피는 다크 로스트 커피위에 휘핑크림을 얹은 부드럽고 우아한 커피이다. 실제 비엔나에는 없지만 세계 각국에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아이리쉬 커피는 위스키가 들어간 커피로 뜨겁게 마시는 커피지만 유리잔에 마신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나는 술을 잘 하지 못해 맛만 보았을 뿐 마시지는 않는다.


 이렇듯 여러 가지 커피가 나를 삶에 풍요로움을 주고 있다. 일을 하다가 잠시 쉬면서 한잔 마시는 커피야 말로 피로를 풀어주고 잠시 여유를 준다. 물론 커피가 모두 외제라 좀 그렇긴 해도 즐겨 마시며 삶에 활력을 주는 물질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