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이야기

중년의 샐러리맨 2007년은 힘들었다네

행복한 까시 2007. 12. 29. 05:33
 

 올해는 다사다난 했던 한해였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다사다난(多事多難)하다는 것을 그냥 사전에 나오는 단어로만 알고 지내왔는데, 실제로 겪고 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몇 년 동안 겪어야 될 일을 한 해에 다 겪은 느낌이다. 그나마 블로그에 조금씩 써온 글들이 올 한해를 기억하게 해줄 뿐이다. 블로그가 없었더라면 올 해 무엇을 했으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머릿속에서 어렴풋이 기억만 했을 것이다.


 # 1월에

 회사가 어려워 졌다는 것이 점점 실감이 났다. 회사에서는 월급날에 월급을 주는 것을 점점 힘들어하고 있다. 게다가 회사에서는 구조조정을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회사에 나가기가 싫었다. 부서 책임자로 많은 갈등이 있었다. 속은 점점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지 개인적으로 고민을 하며 한달을 보냈다. 결국 후배 세 명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내보냈다. 그 충격으로 한동안 힘들어했다. 그 후배들이 다시 직장을 잡아서 일을 하고 있지만, 지금 이순간도 그 죄책감에서 그리 자유롭지는 못하다.


 # 2월에

 회사가 어렵다고 해서 제품을 열심히 팔았다. 모든 업무를 내 팽개치고, 오로지 제품을 팔기만 했다. 아니 지난달에 후배를 내보낸 것을 잊기 위해서 더 열심히 제품을 팔았는지 모른다. 바쁘면 잠시라도 그 기억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제품은 많이 팔았지만, 마음속은 점점 더 텅 비는 것 같았다. 설이 돌아오는 것도 반갑지 않았다.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지만 부모님 때문에 할 수 없이 다녀왔다. 설이 지나고 나서도 마음속은 무겁기만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회사는 조용하기만 하다.


 # 3월에  

  1월,2월에 아팠던 마음의 기억이 조금 사그라졌다고 느끼던 어느 날 회사가 매각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갑작스런 발표라 회사는 폭격을 맞은 것처럼 어수선하기만 하였다. 모두 살길을 찾느라 바쁘기만 하다. 이 커다란 변화 앞에서 차분히 이직준비를 하였다. 직원들이나 가족들에게 겉으로는 태연한척 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불안하기만 하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는 하지만 사회에 나와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일자리가 그만큼 적다는 것이었다. 후배들에게는 스카우트 제의가 여기저기서 들어왔지만 나이가 많은 부서 책임자에게는 일자리가 들어오지 않았다. 간혹 들어오기는 했어도 조건들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부담으로 느껴진다.


 # 4월에

 회사 매각 문제로 실사에 업무인수 인계에 한달이란 시간이 걸렸다. 한 달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내 분신처럼 애지중지 하며 일했던 것을 모두 넘겨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또 한번 괴롭혔다. 머리에서는 이성이란 놈이 그까짓 거 놓아주자고 한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감성은 너무 아깝지 않냐고 미련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인수인계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한 달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두 번의 면접을 보았다. 회사에 다닐 때는 면접관의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면접을 받는 입장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나마 직장을 잡았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 5월에

 1일부터 새로운 직장에 출근했다. 어제까지 전 직장에서 일하고 하루도 쉬지 않고 곧바로 새 직장으로 출근을 한 것이다. 며칠 쉬고 싶었지만 여건이 나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새로운 직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출근하라고 한다. 그리고 샐러리맨이 며칠 쉬어봐야 생활비만 축내는 꼴이 된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여행하기도 쉽지 않고 해서 그냥 출근을 한 것이다. 새로운 직장은 여유가 넘쳤다. 낮에도 돌아다닐 일이 많으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그동안 해가 뜨기 전에 출근하여 해가 진후에 퇴근을 하는 생활의 반복이라 바깥 구경은 엄두도 못 내었다. 한낮에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나니 전혀 딴 세상에 온 느낌이다. 더 신기한 것은 계절의 변화를 오감을 통해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업무에 적응하며 이러한 여유를 만끽하다 보니 5월 한 달이 화살처럼 지나가 버렸다.


 # 6월에

 벌써 한여름처럼 날씨가 무덥다. 입사한지 한달이 지나니 서서히 업무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래도 전 직장 보다는 많이 여유로움을 느낀다. 아직까지는 여유로움이 그리 익숙하지 않다. 과거 일하던 습관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일만 생기면 급하게 해치우는 그 성격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면 빨리 결정하고 일을 진행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이곳은 일의 진척이 늦다. 일을 추진하려고 하면 여기저기 걸리는 부분이 너무도 많다. 일을 빨리 진행했다가 느리게 진행했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 7월에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져가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초기에 입사할 때 약속했던 조건이 이행되고 있지 않다. 돈 문제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어렵다. 3개월째 약속한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 급여 이야기를 꺼내면 돈이 들어오면 해주겠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그냥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런데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든다. 앞으로의 예감이 별로 좋지는 않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여름휴가를 떠났다. 고민해 봤자 머리만 아프니까 휴가 갔다 와서 생각하기로 했다.


 # 8월에

 휴가를 보내며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이 직장에서 더 근무해야하는지에 대해 고심을 했다. 결국 떠나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마침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 왔다. 서류를 제출했다. 그런데 연락이 오지 않는다. 전화를 해서 알아보니 기다리라고 한다. 한 달 내내 기다렸으나 연락이 없다. 다시 연락해보니 기다리라고 한다. 스카우트 제의를 해 놓고도 뽑지 않는 회사도 있는가 보다. 기분이 나쁘다.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일이 당하고 나니 기분이 가라앉는다.


 # 9월에

 돈이 들어오면 입사할 때 제시했던 약속대로 급여를 주겠다고 하더니, 돈이 들어왔는데도 급여는 제대로 주지 않고 있다. 이제는 정말 미련도 없다. 본격적으로 이직 준비를 하였다. 여기저기 직장을 알아보고 있다. 9월말에는 추석이 끼어 있었다. 설과 마찬가지로 추석이 오는 것도 반갑지가 않다. 이번에도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표시내지 않고 조용히 다녀왔다. 일을 하기가 점점 싫어진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자꾸만 회의가 든다. 완전히 의욕상실이다. 출근해서 아주 최소한의 일만 하고 있다. 이제는 출근 하는 것조차 점점 싫어지고 있다. 회사 밖에서도 의욕을 상실한 것 같다. 자신감도 점점 없어지고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이 지속되고 있다.


 #10월에

 내 마음은 괴로워도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산에는 고운 빛깔의 단풍이 들었지만, 내 마음은 회색빛이다. 9월의 연장선에서 10월을 보내고 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의욕을 잃고, 짜증스러운 날이 지속되고 있다. 생활비가 부족해서 아이들의 교육비도 모두 끊었다. 정말로 가슴이 아팠다. 지금까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는데, 생활비 부족으로 그 알량한 교육비도 모두 정지시킨 것이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왔다. 일자리가 생겼으니 면접을 보라고 한다.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사람들을 통해 알아보니 괜찮은 회사였다. 면접도 아주 스피드하게 진행되었다. 면접을 보자마자 입사가 결정되었다. 당장 다니던 직장에서 나오고 싶었지만, 뒷마무리를 위해 11월 중순부터 출근하기로 하였다.


 #11월에

 분주한 한달이다. 다니던 직장 마무리를 하는데 보름이 훌쩍 지나갔다. 이제야 좀 정신이 든다. 아니 정신을 차려야 한다, 지금까지 생활한 것과 같이 나태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 11월 후반에 새로운 직장에 출근했다. 출근해서 일 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회사였다. 회사 환경에 적응하고, 업무파악하다가 보니 11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12월에 

 12월은 너무나 짧았다.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회사에서 일이 많다 보니 늘 늦은 퇴근이다. 아침에 동이 틀 무렵에 출근해서 한밤중에 퇴근을 한다. 주말에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나가면 다른 동네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주중에는 아이들 얼굴 보기도 힘들다. 어떤 날은 퇴근하다가 차안에서 이런 생각도 해본다.‘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하지만 일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일이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가? 이런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행복한 존재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이제 올해도 이틀이 남았다. 정말 고단한 한 해였다. 너무 고단했기 때문에 2007년이 지나가는 것이 속으로는 후련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