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이야기

아빠는 오늘부터 백수란다.

행복한 까시 2008. 11. 29. 10:56

 

 어제부터는 출근을 하지 않는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졸린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허둥지둥 씻고, 국에 밥을 말아 급하게 먹지 않아도 된다. 출근을 빨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는 편안한 아침이다. 아이들과 함께 아침을 먹었다. 네 식구가 오순도순 모여 앉아 밥을 먹은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아이들도 즐거운지 재잘대며 밥을 먹는다. 아내는 아이들이 빨리 밥을 먹지 않는다고 성화이다. 아이들은 엄마의 잔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떠들고 있다. 밥을 빨리 먹으라는 엄마와 빨리 먹지 않고, 떠들고 장난치는 아이들과 전쟁이다. 내가 없을 때에도 이랬을 것이라고 금방 상상이 간다. 이렇게 토닥거리며 밥을 먹는 모습도 또 하나의 행복이다. 가족들과 아침을 같이 먹는 것도 오랜만이라서 낯설지만 또 하나의 행복인 것이다. 


 남들이 일하는 평일 날 집에 있는 것이 어색하기만 하다. 이것 또한 얼마만인가? 지금까지 20년을 일하면서 휴가나 휴일을 제외하면 쉰 날이 거의 없었다. 몇 차례 직장을 옮겼어도 쉬지 않고 바로바로 출근 했다. 그래서 집에서 쉬는 것이 더 어색한 것이다. 쉬는 것이 생활화 되지 않아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오랜만에 집에 있으니 아이들에게 좀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미술 준비물을 사러 화방에 갔다. 도화지도 사고, 붓도 샀다. 아이들이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돌아오는 길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꽃게를 사러 농수산시장에 들렀다. 단골가게 주인아저씨가 반갑게 맞이한다. 오랜만에 왔다고 안부를 묻는다. 대충 대답하고 꽃게를 주문했다. 냉동꽃게는 없고, 살아있는 활 꽃게만 있다고 한다. 꽃게가 살아서 꿈틀거린다. 냉동꽃게는 죽어 있으니 불쌍하지 않은데, 살아있는 꽃게를 비닐에 담으니 불쌍한 마음이 앞선다. 저녁에 꽃게탕을 끓이면 아이들이 좋아할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만 해도 마음이 뿌듯하다.


 다음은 과일가게로 갔다. 아이들이 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집에 다른 과일이 있어 귤을 많이 사주지 못했다. 그랬더니 귤을 엄청 먹고 싶어 한다. 사람 심리가 없으면 더 먹고 싶어 하는 것이다. 과일 가게 주인이 건네주는 귤을 까서 입에 넣었다. 새콤하고 달콤한 맛과 함께 귤 향기가 입안 가득히 퍼져나간다. 한 상자를 집어 들었다. 제법 무게가 나간다. 어깨에 둘러메고 자동차로 오는데 아내는 그 모습이 우스운지 깔깔대며 웃고 있다. 아내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귤을 한 상자나 샀으니 기분이 좋은 것이다.


 점심을 먹고 작은 딸 미술 수업에 데려다 주었다. 아빠와 같이 가니 기분이 좋은 것이다. 가면서 친구들 이야기를 재잘거린다. 작은딸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고 대답을 해준다. 목적지에 다다르니 아빠는 이제 가보라고 한다. 본인의 목적이 달성되고 나니 이제는 필요 없다는 말투이다.


 가족들과 하루를 보내니 행복하다. 가족들의 일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족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하지만 백수 생활이 오래되면 가족들이 싫어할 것이고, 아빠가 집에 있다는 것을 지금처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이니까 나도 좋고 가족들도 좋아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에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 휴식이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더 멀리 뛰기 위해 잠시 후퇴한 것뿐이다. 집에서 쉬는 동안 가족들과 행복을 많이 찾고 누리면서 기억에 남는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