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 이야기

딸의 책가방과 나의 책보자기

행복한 까시 2008. 1. 13. 10:12
 

 내년에는 작은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작은놈이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내는 입학 날짜가 아직도 멀었는데 벌써부터 가방을 준비하고 야단이다. 아내는 작은 딸이 학교에 간다고 하니까 또 다른 기분을 느끼는 것 같다. 큰딸이 학교 갈 때보다 더 걱정을 한다. 늘 집에서 책도 잘 읽지 않고 놀기만 하는데, 과연 학교에 가서 공부나 제대로 하려는지 나도 내심 걱정이 된다. 이런 어른들의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에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어제는 아내가 처제와 함께 시내에 가서 가방을 사가지고 왔다. 처제와 시내에 갔다가 예쁜 가방이 보여서 샀다고 한다. 처제가 집에 놀러 왔다가 조카의 입학 선물로 사준 것이다. 작은 딸은 가방이 무척이나 좋은 모양이다. 퇴근해서 신발도 벗기 전에 가방 자랑을 한다. 가방은 내 마음에도 들었다. 진한 보라색 가방이 너무 예쁘다. 더구나 보라색은 우리 작은 딸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가방을 들고 다니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가방도 진한 보라색, 신발주머니도 진한 보라색으로 세트이다. 진한 보라색은 때가 묻어도 잘 보이지 않아서 아내가 좋아한다. 때가 보이지 않으면 일년에 두 번 정도만 빨면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큰 딸의 가방도 진한 빨간색이다. 진한 색을 좋아하는 것은 순전히 아내가 세탁을 적게 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인 것이다.


 학교에 입학하는데 사실 책가방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얼마나 공부를 하느냐가 중요하지 도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책가방도 없었다. 책가방을 들도 오는 아이들이 한 반에 한 두 명 정도만 있었다. 모두 보자기에 책을 싸 가지고 다녔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보자기에 책을 싸 가지고 다니니까 책가방이 있는 아이들도 나중에는 보자기를 가지고 다녔다. 아마 군중심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가방뿐만 아니라 필통, 크레파스, 색종이, 스케치북 등 모든 학용품이 궁핍했다. 그래도 초등학교 시절은 행복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크레파스가 부족해서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던 기억, 공책이 부족해서 숙제를 다해가자 못했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늘 부족했던 학용품에 이력이 난 탓인지 대학교 때에는 책가방도 사지 않고 학교에 다녔고, 오로지 볼펜 한 자루와 연필 한 자루로 대학을 마쳤다. 학습도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서였다. 도구가 많으면 오히려 공부하는데 거추장스럽다. 단순하고 심플한 것이 공부하는데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의 딸의 가방을 사주고 보니 어린 시절 책보자기 생각이 난다. 책을 보자기에 올려놓고 보자기 끝자락으로 매듭을 지어 묶어서 다녔다. 남학생들은 옆구리에 끼고 다니거나 등에 메고 다녔고, 여학생들은 허리춤에 묶고 다녔다. 나 같은 경우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날이 많았다. 보자기에 책을 싸가지고 다니면 비가 오는 날이 가장 싫었다.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날은 책이 젖어버리는 것이었다. 책이 젖었다 마르면 부풀어 오르는데, 이런 현상이 너무도 싫었다. 책을 무엇보다 소중히 했던 어린시절에는 이렇게 망가진 책은 정이 떨어져 버렸다.


 지금도 작은 딸은 가방을 메고 다닌다. 그리고 가방을 열어보고 또 열어본다. 판촉물로 받은 문구세트도 자랑을 하며 자꾸만 열어본다.

 “아빠 가방 예쁘지.”

 “문구 세트도 있어.”

 “아빠도 갖고 싶지?


 “그래 승진이는 좋겠다.”

 “아빠도 무진장 갖고 싶은걸.”

 하며 과장되게 말을 받아 주었다. 그러면 작은 딸은 더 신나서 자랑을 한다. 학교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즐거워 하고 있다. 오늘밤 작은 딸은 가방 때문에 잠도 못 잘 것 같다. 이렇게 좋아하는 작은 딸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금방 행복해 지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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