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시 이야기

힘들었던 백수 생활을 끝내며

행복한 까시 2009. 1. 18. 12:28

 

 직업이 없다는 것은 사람을 여러모로 힘들게 한다. 백수 생활이 힘들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표를 낸 것이다. 사표를 내지 않고 버틸 수도 있었지만, 상황이 나를 밀어 내었다. 한 달 반 동안 힘들게 보냈지만 나의 선택이 옳았다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남들이 보면 아직 배가 불러서 그런다고 비아냥거리기라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 아직 배가 불러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지금이 얼마나 어려운 불경기 이며, 불경기는 이제 시작이라고 항간에 떠도는데 사표를 냈으니 말이다. 한 때는 사표 낸 것을 후회한 적도 있었다. 그냥 나 자신만을 생각하며 회사에 눌러 앉아 있고 싶은 마음도 솔직히 있었다.   


 처음 한 2주 정도는 너무나 행복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외식도 하고, 그동안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일들을 해주었다.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 소박하게 지냈어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한 시간이 많은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 이었다. 내 딴에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고 했는데, 아이들의 만족 정도는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아내와 등산도 가고, 영화도 보고,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하다 보니 두 주가 쏜살같이 흘러갔다.


 복잡한 업무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너무 좋았다. 늘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고 짜내야하는 직업은 힘든 일이다. 어떤 때는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직업이지만, 늘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멀리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꽁꽁 숨고 싶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회사에서도 힘든 것을 별로 표시내지 않기 때문에 남들은 내가 쉽게 일하는 것으로 안다. 일이란 힘든 것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잘 하는 살 나름대로 힘든 것이고, 일을 못하는 사람은 못하는 나름대로 힘든 것이다. 그래서 일이란 누구에게나 힘든 것이다. 아무튼 업무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이런 해방감을 만끽하다가 보니 한달이 금세 지나가 버렸다.


 한달이 지나니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불안한 마음은 있었다. 그러나 그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려고 하였다. 블로그에도 의도적으로 밝은 글만 올리고, 어두운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어 가면을 쓰고 살았다. 칙칙한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동정 받는 것이 싫었던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취업을 빨리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취업을 하려고 여러 군데 알아보니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이가 가장 걸림돌이 되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취업에 가장 장애요소가 되는 것이다. 스펙이 아무리 괜찮아도 나이라는 조건이 취업을 방해했다. 나이라는 높은 벽을 절실히 실감했다.


 집에 있으니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매일 집을 나가던 사람이 집에 있으니 집안이 늘 어수선 한 것이다. 한달이 지나니 아내가 잘 적응을 못하는 것 같다. 내가 낮에 집을 비우는 것에 대해 익숙해 있는데, 낮에 집에 있으니 적응하기가 힘든 것이다. 두 번째는 딸아이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을 때가 가장 난감하다. 또 아내가 아는 사람들이 집에 와도 똑같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다. 괜히 의기소침해지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 다음 힘든 것은 외로움이다. 그동안 회사 동료들과 회사에 대해 이야기도 하며 즐겁게 지내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활기차고 바쁘게 업무하던 일들이 그리워 진 것이다. 업무로 머리가 아팠던 때가 새록새록 생각나며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고향을 떠난 사람이 향수병을 앓는 것처럼 회사가 점점 그리워졌다. 직업이 없다는 것은 외로움과도 싸워야하는 것이다. 회사 다닐 때에는 거래처 사람들도 귀찮을 정도로 전화를 해대더니,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전화 한 통도 오지 않았다. 회사 있을 때에는 간이라도 빼줄 것 같이 하던 이들의 전화도 모두 끊겼다. 사람들이 원래 이렇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나도 속물적인 요소가 있는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나 보다.


 또 힘든 것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 뭐하느냐고 물으면 할말이 없다는 것이다. 괜히 주눅이 들어 얼버무리게 되고, 어정쩡하게 넘어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워지고, 자신감이 점점 없어진다.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지려고 애써도 자꾸 주눅이 들어 그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육체적으로는 편했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일하는 것 못지않게 피곤했다. 아니 일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어떤 날은 기분이 좋아졌다가도, 어떤 날은 기분이 한없이 추락하는 날도 있었다. 수시로 기분이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하기도 하였다. 매일 나가던 사람이 집에 있으니 일종의 금단 현상인 것 같다. 여기에 쓰인 것은 그 고통의 단편들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이 고통의 시간도 끝낼 때가 온 것 같다. 그 동안 집에서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나를 믿어준 아내와 가족들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월요일부터는 새 직장으로 출근을 해야 한다. 불황인데도 일자리가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 초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일하고 싶다. 그리고 일이 있다는 것에 대해 행복감을 느끼고 살아야겠다는 교과서 같은 다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