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시 이야기

일손 부족 현상이 점점 심해지는 농촌 들녘

행복한 까시 2009. 6. 8. 19:47

 고향 시골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오월 어버이날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했다. 돌아가신 뒤에 자주 찾지 못했다고 후회하기 보다는 살아계실 때 한번이라도 더 찾아뵙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고향집 한번 찾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부모님을 비롯한 고향의 어른들은 한해가 다르게 늙어만 가신다.


 어린시절 젊음을 자랑하고, 힘자랑하시던 동네의 어른들은 모두 돌아가셨거나, 살아계셔도 거동도 불편한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동네의 산천은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는데, 사람들만 변해가는 것 같다. 하긴 코 흘리게 어린아이였던 내가 중년이 다 되었는데, 어른들이 할아버지가 된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고향 마을의 복숭아 과수원에서는 봉지 씌우기 작업이 한창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복숭아 봉지 씌우는 작업을 거들었다. 복숭아에 봉지를 씌우는 이유는 병해충으로부터 복숭아를 보호하는 것도 있고, 농약이 복숭아에 덜 묻게 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복숭아가 햇볕을 많이 받으면 붉게 변하는데, 봉지를 씌워서 붉게 변하는 것을 방지하여 하얗게 백도 복숭아를 만드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복숭아나무에 봉지를 씌우면 한 나무씩 종이 열매가 달린 것처럼 종이가 주렁주렁 매달린다. 열매 한 개 한 개마다 봉지를 씌우는 작업이라 속도가 엄청 느리다. 나무 한 그루 씌우는데 한 시간이 더 걸린다. 4사람이 하루 종일 작업해도 10그루 씌우기도 힘들다.      


 산 중턱에서 복숭아 과수원에서 작업을 하는데, 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초록 물결이다. 산도 초록이고, 논은 모내기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연한 초록빛이다. 초록색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 진다. 더불어 마음의 때도 씻겨 나가는 기분이다. 얼마 만에 느끼는 편안한 기분인가? 회사에서는 하늘 한번 쳐다볼 수 없는 닫힌 공간에서 서류, 시제품, 시약, 실험재료들과 씨름을 하였는데, 자연에 나와 머리를 비우고 작업을 하니 편안한 마음이 든다. 가끔 머리를 비우고 아무 생각 없이 일을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머리를 쓴다는 일은 사람의 피를 마르게 하는 것 같다. 글 쓰는 작가가 한 작품을 쓰기 위해 고심하고, 고뇌하는 것 같은 일이다. 작가의 힘든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참 작업을 하고 나니 온몸에서 신호를 보내온다. 팔에서는 팔이 아프다고, 손가락에도 통증이 오고, 제일 고통스러워하는 부분은 고개이다. 나무를 올려다보며 작업을 하니 고개가 제일 뻐근하다. 한나절 하고도 이렇게 힘든데, 형은 거의 열흘 동안 쉬지 않고 작업을 하신 것이다. 아프다는 표현도 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작업을 했다. 감히 아프다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수확을 할 때면 돈이 많이 남지 않는다고 했다. 농자재 값, 농약 값, 비료 등의 비용을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몇 푼 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농사 짓은 사람 지신의 인건비만 겨우 나온다고 한다. 그나마 인건비라도 나오면 다행이라고 한다.   

 그리고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일손 부족이다. 일손을 구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 현상은 해가 갈수록 더해만 가고 있다. 이번 모내기철에도 객지에 나가 있는 아들이나 사위들이 거들어서 모내기를 한 집이 많았다고 한다. 들판을 보니 일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과거에는 들녘에 나오면 일하는 사람들로 들판이 활기가 넘쳤는데, 지금은 적막이 흐르고 있다. 겨우 씨 뿌리고, 수확하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프신 몸을 이끌고 농사를 짓는다는 사실이다. 땅을 놀리기도 싫고, 또 생계를 이어가야 하니 아프신 몸을 이끌고 일을 하시는 것이다. 어머니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아들인 형을 돕기 위해 일을 하신다. 조금이라도 도와야 마음이 편하신가 보다. 아버지는 몸이 편찮으셔서 일을 못하고 집에 계시니 짜증만 내신다. 일은 많은데, 돕지 못하니 마음이 불편하신 것이다. 집에 계시니 답답하고, 시간도 안 가니 역정만 내시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일을 할 때가 가장 좋은 때인데, 집에만 계시니 일을 하는 것보다 더 힘들어하신다. 


 앞으로 일손 부족 현상은 더 심각한 문제로 다가 올 것 같다. 지금 농촌을 지키시는 어른들이 앞으로 오년에서 십년 정도 지나면 일을 거의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농사짓는 일손은 턱 없이 부족 할 것이다. 지금은 그래도 그분들이 농촌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들이 있기에 우리 농산물을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상당수의 농산물을 수입에 의존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일을 하지 못하시는 아버지를 보니 가슴이 아프다. 아버지가 활기차게 들판에서 일하시는 모습이 그립다. 일을 하시면서 제대로 못한다고 불호령도 내리시던 때가 그리워진다. 이 그리움 속에는 젊은 시절 아버지의 모습이 그립기 때문일 것이다. 시골에 다녀 온지 하루가 지났지만 가슴 한 구석에는 집을 지키고 계신 쓸쓸한 아버지의 모습과 무거운 마음이 함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