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철학

현대인들은 사육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행복한 까시 2009. 5. 9. 09:27

 모든 것이 대량 생산을 하는 산업사회가 시작되면서 공산품의 대량 생산은 물론 식료품까지 대량 생산하는 시대가 되었다. 식료품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서 한 두 마리씩 길러지던 가축들이 사육하는 방식을 통해 대량 생산 하게 되었다. 이러한 대량 생산 방식은 요즘 들어 사람들에게도 전해진 것 같다. 요즘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마치 동물들이 사육되는 것과 같은 생활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다.


 사람들이 임신을 하면 약 8주부터는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다. 임신한 산모들이 병원에 가서 줄을 서서 진료를 받는 것을 보면 사육되는 동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떠한가? 팔에 번호표를 붙인 채로 바구니에 담아 신생아실이라는 명목아래 한군데로 수용된다. 잠시 동안이지만 이런 모습을 볼 때 사람들도 사육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금 자라서는 어떠한가? 부모들이 집에서 아이들을 보기 힘들고 맞벌이를 하니까 거의 모든 아이들이 어린이집으로 보내진다. 여기부터 본격적으로 사육되는 것 같다. 단체 급식, 단체로 한글을 배우고, 영어를 배우고, 놀이를 하지만 제한된 공간 안에서 제한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인다. 물론 아이들을 잘 교육시킨다고는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획일화되고, 개성은 많이 사라져 버린다. 그래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프로그램의 차별화가 어느 정도는 있다고 생각된다. 


 정말로 문제는 학교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학교에 들어가면 본격적인 사육이다. 동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이 국가별로 거의 같은 교과서를 가지고 획일적으로 교육을 받는다. 요즈음은 창의적인 교육을 한다고 하지만 이미 그어진 선의 한계는 벗어나기가 어렵다. 거의 같은 학교 교정, 거의 같은 책상,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옷도 똑같은 옷을 입게 한다. 이러한 교육을 우리나라 학제에 비추어 볼 때 16년간이나 지속한다. 그래서 똑같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대량으로 사회로 진출하는 것이다. 


 학교를 졸업해도 마찬가지이다. 회사에 들어가면 정확한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일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한된 공간 안에서 주어진 일을 한다. 매일 조금씩 다른 일을 하지만 크게 보면 반복되는 업무가 많다. 이렇게 일하는 직장인들도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사육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돈만 있으면 음식을 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으며, 간단한 조작만 가하면 먹을 수 있는 식품들이 널려 있다. 이렇게 편리한 음식물들을 볼 때 사육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은 사람들이 사육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해준다. 조금만 추우면 난방이 저절로 들어오고, 조금만 더우면 에어컨이 나와 사람들을 무기력하고 연약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집에 문제가 생기면 관리사무소에서 다 알아서 해준다. 이런 것들이 사람들을 나약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육되는 가축처럼 전염병이 돌면 쉽게 질병에 걸리고, 전염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요즘 우리들의 삶을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분업화 사회라고는 하지만 점점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지는 느낌이다. 밥은 전기밥솥, 빨래는 세탁기, 청소도 청소기, 설거지는 식기세척기, 반찬은 반찬가게 등등 갈수록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생활은 편리해졌다고는 하지만 왠지 사는 모습은 메말라 가는 느낌이다.  


 어느 동화책에 나오는 개와 늑대의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 개는 주인에게 말만 잘 들으면 먹을 것이 제공된다. 또한 자유가 없는 대신 잠자리와 안전도 어느 정도는 보장된다. 산에 사는 늑대는 비록 배고픔에 굶주릴 때도 있고, 안전을 위협받는 일도 있지만, 광활한 산야를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결국 늑대는 먹을 것이 많은 개의 삶을 동경해 보지만 결국 나중에는 자유로운 늑대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이 이야기로 우리네 삶의 한 단면을 생각해 보게 된다.

   

  또한 이러한 상상도 해 보게 된다.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만일 우리 모두 산으로 피신해야 일이 발생했을 때 과연 그곳에서 살아남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다. 아마 사육으로 길들여진 연약한 사람들은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인가를 내 힘으로 해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즉 어릴 때부터 사육에 길들여져 왔으므로 자연에 적응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


 편리함으로 무장된 현대인의 삶은 자연에 내버려졌을 때 인간을 무능하게 만드는 것 같다. 물론 사람들한테 사육한다는 표현이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반발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이 추구하는 편리성 문제는 대체 어디까지 편리해질지 몰라도 이 편리한 문명은 나중에 인류에게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지금도 회사에서는 전기 공급만 끊겨도 회사 업무가 모두 마비된다. 회사뿐만이 아니다. 만일 전기 공급이 끊긴다고 상상해 보자. 이 끔찍한 일은 상상하는 것조차 두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