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풍경

화양동 계곡에서 즐기는 때늦은 피서

행복한 까시 2009. 8. 16. 12:10

 올 휴가 때는 물놀이도 제대로 못했다. 피서를 다녀왔어도 물놀이를 하지 않으면 피서를 다녀 온 것 같지 않다. 마치 신당동에 가서 떡볶이를 먹지 못하고, 장충동에 가서 족발을 먹고 오지 않은 것처럼 허전하다.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아이들에게 계곡에 간다는 사실을 알렸다.


 “얘들아 이번 휴가 때는 물놀이를 못 했으니 이번 주말에는 화양동 계곡에나 가자.”

 “ 정말요. 진짜로 가는 거죠? 야호! 신난다.”


 평소에 거짓말도 별로 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다시 한번 확인한다. 아마도 너무 좋아서 확인하는 것이다. 사실 물놀이는 아이들 때문에 가는 것이다. 아이들이 물을 너무도 좋아한다. 보통의 다른 아이들처럼 물에서 튜브타고, 물장구치는 것을 좋아한다. 일년 내내 아파트에 갇혀 지내니 아이들도 답답할 것이다. 그나마 더운 여름철이나 되어야 피서를 핑계로 계곡을 찾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지간히 좋은가 보다. 깨우지도 않았는데, 여섯시에 기상을 한다. 일어나서 빨리 가자고 성화이다. 아침도 먹지 않고 출발했다. 늦게 가면 자리가 없을까봐 염려되어 일찍 출발했다. 도착해 보니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다. 더 일찍 출발한 사람들도 많고, 전날 와서 야영을 한 사람들도 많았다. 앉을 자리도 별로 없다. 간신히 조그만 영역을 확보해서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살면서도 영역을 차지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살아갈 집을 마련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고, 조그마한 땅이라도 확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피서지도 인간들이 사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서로 영역을 차지하려고 난리들이다. 먼저 도착해서 텐트와 돗자리로 영역을 확보해 놓고, 친척들을 위해 자리를 맡아 놓는다. 오밀조밀 텐트가 쳐있는 모습이 주택을 연상시킨다. 길게 늘어선 텐트 집단은 도시에 빽빽하게 들어선 개인주택과도 같다.


 텐트 줄에는 빨래가 널려져 있고, 텐트 주변에는 임시로  만들어진 주방이 자리하고 있다. 주방에서는 끊임없이 음식이 만들어 진다. 삼겹살을 굽는가 싶더니, 빈대떡이 만들어지고 있고, 옥수수가 삶아지고, 감자가 삶아진다. 수박과 복숭아가 깎아지고, 커피까지 만들어 낸다. 집에서 먹는 것과 동일한 형태의 음식이 만들어 진다. 쉴 새 없이 먹는 음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먹는 것에 한 맺힌 사람들 같다. 물론 나도 그 무리 중의 한 사람이다.


 해가 중천에 오르자 냇물 속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물속으로 뛰어든다. 아이들도 즐겁고 어른들도 즐겁다. 물속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똑 같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모두 동일한 연령대 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차이라면 아이들은 덩치가 작고 어른들은 덩치가 크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즐겁게 노니는 모습을 바라보니 내 마음도 행복해 진다. 우리 두 딸도 다른 사람들처럼 즐거워서 얼굴이 환하게 피었다. 즐겁게 놀고 있는 두 딸들을 보면서 내 얼굴도 덩달아 밝아진다. 깨끗하게 흐르는 물의 유혹 때문에 참지 못하고, 나도 물로 뛰어들었다.


 “아빠 놀아 주세요. 어서 물 속으로 들어 와요.”

 “작은 딸이 놀아 달라고 하네. 잠시 물속에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올게요.”


 아내에게는 아이들과 놀아준다는 명분으로 물에 뛰어든 것이다. 실은 나도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물장구도 치고, 물고기도 잡고 싶은 것이다. 물에 들어가니 머리에서 발끝까지 시원함이 전해 온다. 그동안 도시에서 쌓였던 때가 모두 빠져 나가는 느낌이다. 작은 딸을 튜브에 태워서 놀아 주었다. 혼자 놀 때보다 더 즐거워한다.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잠시 쉬고 있는데 만두와 꽈배기를 파는 아주머니가 지나간다. 지나가면서 만두를 사라고 외쳐보지만 누구 하나 관심 주는 사람도 없다. 모두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왔는데, 지나가는 행상 아주머니의 외침이 귀에 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얼굴에는 고난의 세월을 말해 주듯 주름살이 깊게 패여 있고, 검게 그을린 얼굴이 안쓰럽게 보였다. 누군가는 냇가에 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 우리들이 계곡에서 노는 장소에서도 주차비를 받는다. 그 사람들도 남들이 노는 틈을 타서 돈벌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사람들의 즐거움을 상대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고, 슬픔을 상대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사람들의 즐거움을 주는 대가로 돈을 버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화양동 계곡에서 하루가 저물어 간다. 올해의 마지막 피서인 것이다. 다음주부터는 물이 차서 들어가지도 못할 것이다. 아쉽지만 이것으로 올해의 피서를 마무리해야 한다. 지금도 귓가에서는 물놀이 하는 사람들의 즐겁게 재잘대는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으면 아직도 계곡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