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풍경

어머니가 애지중지 하시던 돌삼형제

행복한 까시 2009. 9. 17. 08:27

 

  추석이 다가 오니 고향 생각이 난다. 고향집에는 어머니가 애지중지 하시던 돌삼형제가 있다. 그 돌 삼형제는 어린시절 어머니의 고달픈 삶을 생각나게 하는 살림 도구인 것이다. 어머니가 힘겨워 하면 같이 힘겨워 하고, 어머니가 즐거울 때는 같이 즐거워하는 어머니의 친구이기도 하였으며, 어머니의 분신처럼 어머니 곁에 늘 맴돌며 동고동락하였다. 이쯤 되면 독자님들은 그 돌 삼형제가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다. 그 돌 삼형제는 바로 맷돌, 다듬잇돌, 절구돌이다.

 

 

 #맷돌


 맷돌은 요즘의 믹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음식을 하기 위해 재료를 잘게 부수는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비 오는 날 부침개를 할 때에도 맷돌은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녹두전이나 팥으로 전을 부칠 때 어머니는 미리 녹두나 팥을 불려서 껍질을 벗긴 다음에 맷돌에 갈았다. 벗긴 녹두나 팥을 숟가락으로 떠서 맷돌 아가리에 넣으면 하얗게 갈려진 국물이 맷돌 옆구리로 흘러 나왔다. 이 국물에 파, 배추, 풋고추를 넣고 어머니는 부침개를 만들어서 비 오는 날 간식으로 먹었다.


 또한 제사가 있거나 집에 큰일이 있을 때 두부를 하기 위해 콩을 갈 때에도 맷돌을 사용하였다. 많은 양의 두부를 할 때에는 한나절 이상이나 맷돌질을 하였다. 맷돌을 돌리면서 물에 불린 콩을 숟가락으로 떠서 홈에 넣으면 돌 두 개의 마찰에 의해 갈려져 돌 틈으로 빠져 나왔다. 맷돌이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 옆에서 맷돌이 돌아가는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기도 했고, 어머니의 숟가락을 빼앗아서 콩을 떠서 홈에 넣기도 하다가 흘려서 혼나기도 하였다.


 맷돌질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닌 것 같다. 너무 빨리 돌려도 안 되고, 너무 느리게 돌려도 안 되는 것 같다. 돌리는 속도에 의해 내용물이 곱게 갈리기도 하고, 굵게 갈리기도 한다. 그리고 맷돌을 오래 돌리면 팔이 무척 아프다고 한다. 요즘도 유명한 두부 집에는 맷돌을 이용하여 두부를 하는데, 맷돌에 맛을 내는 마법이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시대가 변하여 맷돌도 모터를 이용해서 돌리는 것 같다. 또한 마른 팥이나 녹두를 반으로 쪼갤 때에도 맷돌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믹서에 의해 우리 집에 있는 맷돌도 하는 일없이 구석방에 처박혀 놀고 있다. 세월에 의해 뒤로 밀려난 것이다.

 

 

  #다듬잇돌


 다음은 다듬잇돌이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도 다듬잇돌 때문이다. 며칠 전에 라디오에서 다듬잇돌 소리를 들었다. 뚝닥뚝닥 다듬이질 소리를 들으면 어린시절 생각이 저절로 난다. 다듬이질 소리에도 어머니의 고된 일상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다듬이질은 우리 한복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한복의 세탁하여 구김을 없애고, 옷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다듬이질을 꼭 해야 했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한복을 짓기 위해 밤늦도록 다듬이질을 하였다. 고된 일상 중에서 하는 다듬이질이라 어머니는 종종 다듬이질을 하면서 졸기도 하셨다.


 다듬잇돌은 어머니에게 있어 귀중한 가보 같은 것이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외할아버지가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귀한 박달나무로 만들어졌는데 무게도 꽤 나갔다. 혼자 들기 힘들 정도로 무겁다. 윗면은 어떻게 손질을 하셨는지 매끄럽기가 비단결 같다. 우리가 가끔 만지기라도 하면 어머니는 혹시나 흠집이 날까봐 알씬도 못하게 하셨다. 어린시절 그 다듬잇돌에 올라앉았다가 불호령을 받은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지금은 그 귀한 다듬잇돌도 사용할 일이 없어 맷돌과 같은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돌절구

 

 마지막으로 돌절구 또한 어머니의 삶에서 귀중한 도구였다. 보통 시골집에는 나무로 된 절구가 있었지만 우리 집에는 돌로 된 절구가 있었다. 그 절구는 아주 옛날 디딜방아에 쓰던 절구를 파낸 것이었다. 여름에 열무김치를 담글 때 어머니는 돌절구에다 빨간 고추를 찧어서 사용했다. 김장을 할 때 생강이나 마늘을 찧을 때도 사용하였다. 그리고 치아가 없는 할머니를 위해 옥수수를 찧어드리거나 여러 가지 음식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어머니는 돌절구를 이용하였다. 돌절구는 어머니가 요리를 만들어 내는 요술절구였다. 그 절구에 들어 갔나가 나오는 음식은 모두 맛이 있었으니 말이다.


 돌절구가 가장 많이 쓰일 때는 인절미를 만들 때였다. 인절미에 입힐 콩가루를 빻을 때에도 사용되었고, 찰밥을 만들어 인절미로 변신시킬 때에도 이 절구는 꼭 필요했다. 인절미를 하는 날의 절구 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마치 우리 집에서 인절미를 만든다고 광고하듯이 쿵쿵 절구소리는 담을 넘어 마을로 퍼져 나갔다. 이 절구 또한 여인네의 시집살이에 대한 애환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이 절구도 이제는 자주 쓰이지 않는다. 아직까지 쓰임새가 있는 물건이지만 어머니가 절구질을 하실 힘이 없어 절구가 쉬는 것이다. 집 뒤뜰에서 어머니가 사용해 주시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맷돌, 다듬잇돌, 돌절구의 돌 삼형제는 나에게는 어린시절 추억이 어려 있는 물건이지만 어머니에게는 고단한 시집살이의 상징일지도 모르겠다. 느린 삶에 맞게 살아가던 옛 도구들은 세월의 저편에 묻혀버리고, 대신 스피드하고 편리한 시대에 맞추어 여러 가지 사용이 간편한 도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라디오에서 사라져가는 다듬이질 소리처럼 이런 도구들도 차츰 사라져 가는 것 같다. 아마도 한 세대가 더 흐른다면 이런 도구들도 구석기시대의 돌도끼처럼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