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 이야기

얻어 입힌 딸의 옷때문에 우울한 아빠의 마음

행복한 까시 2009. 10. 9. 08:39

 며칠 전에 아내가 동네 친구로부터 딸아이의 옷을 얻어 왔다. 아내의 말로는 별로 입지 않은 옷이며, 새 옷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아이들은 금방 자라기 때문에 옷을 사 주어도 한철 입히면 그만이기 때문에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요즈음 아동복이 여간 비싸지 않은가? 좀 입힐 만 한 것은 제법 비싸고, 싼 것을 사면 몇 번 입히지 않아 금세 낡아 보인다.


 작은딸에게 옷을 입히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옛날 어린 시절 옷에 대한 추억이 스쳐지나간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 먹는 것 걱정 안하면 잘사는 축에 들었다. 도회지에 비하면 형편없이 가난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옷을 사서 입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시절이었다. 소풍을 가거나, 시내로 여러 가지 대회(요즘으로 치면 경시대회)에 출전하거나, 아니면 추석, 설 명절 때나 되어야 겨우 옷을 사주셨다. 그나마 이런 행사가 있을 때 옷이나 얻어 입으면 다행이었다. 그 때도 옷을 얻어 입지 못한  친구들도 많았다. 그나마 중 고등학교 때는 교복을 입어서 사복 구경은 거의 할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는 교복을 입고, 집에서는 체육복이나 추리닝을 입고 살았다.


 나의 어린 시절에도 어머니는 옷을 얻어서 입히려고 했다. 아마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되는 데, 어머니는 겨울에 입는 골덴 점퍼를 얻어 와서 나에게 입히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무척 입기가 싫었다. 그 옷은 여름 홍수 때 구호품으로 들어온 것을 이웃집 사람이 받아서 우리 집까지 건너온 옷이었다. 어린 마음에 그 옷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상상을 했다.


 ‘아마 그 옷은 죽은 사람이 입던 옷이었을 지도 몰라.

 그 옷을 입던 아이가 죽어서 내다버린 것을 주워온 것일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으면 멀쩡한 옷이 왜 여기까지 왔겠어?’


 ‘아냐, 거지가 입다가 버린 것일지도 몰라.

 거지가 입던 옷이며 지저분할 텐데.

 이것도 아닌 것 같고. 도대체 누가 입던 옷일까?

 궁금해 미치겠네. 보나마나 이 옷은 이상한 옷 일거야.’


 이런 상상을 하니 그 얻어온 옷이 보기도 싫어졌다. 이런 나의 마음을 모른 체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는 계속 입어 보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나에게 그 옷을 억지로 입혀 주셨다. 머릿속에서 죽은 아이의 옷일 것이라는 생각이 맴돌고, 그 생각 때문에 몸에서는 알레르기가 도든 것처럼 간지러웠고, 식은땀이 흘렀다. 이런 내 마음을 모른 체 어른들은 좋다고 계속 말씀하셨다.


 “야 까시 옷 무지 좋다. 그 옷 입으니 사람이 달라 보인다. 나도 좀 입어 봤으면 좋겠다.”


 진심인지 아닌지 어른들은 입에 침도 안 바르시고 거짓말 같은 칭찬을 하셨다. 그러나 내 귀에는 칭찬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냥 빨리 옷이나 벗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 옷을 입지 않았고, 옷을 입지 않는다고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께 무지하게 혼난 다음 그 옷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런 이유에서 부모님에게 미움도 많이 받았다. 그 외에도 부모님이 옷을 사다주면 까다롭게 굴며 옷을 입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일화가 많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이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철이 조금 드나 보다. 부모님의 심정을 헤아리니 말이다.


 아직 딸들이 어려서 그런지 몰라도 옷을 가져다주니 좋다고 하며 입어보고 난리다. 이 모습을 보니 괜히 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나는 옛날에 남이 입던 옷을 무척 싫어했으면서, 딸들에게 얻어온 옷을 입히려고 하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얻어온 옷을 딸에게 입히니 마음이 울적한 것이다. 나도 어린시절 얻어온 옷을 아무렇지 않게 입었다면 이런 마음이 들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예쁜 옷을 많이 사주지 못해 더더욱 우울한 것이다. 총각때 딸아이를 낳으면 예쁜 옷을 많이 사서 입히는 꿈을 꾸었는데, 현실이 따라주지 못하니 기분이 가라 앉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하고, 딸들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좀더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이러한 명분을 가지고 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희석해 보고 싶은 것이 아빠의 마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