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시 이야기

초보 기러기 아빠는 일요일 저녁이 되면 쓸쓸해진다.

행복한 까시 2009. 12. 17. 06:18

 

  금요일 저녁이면 기분 좋은 마음으로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가는 길은 발걸음도 가볍다. 가족들이 기다리기 때문에 마음은 바쁘지만, 안전을 위해 차분히 운전한다. 집에 도착하면 두 딸들과 아내와 상봉한다. 두 딸들은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환영을 한다. 마음속에서는 흐뭇한 마음이 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되어 머릿속을 어지럽게 한다.

 

  얼마 전에 수도권에 있는 직장으로 옮겼다. 최근에 한 직장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방황을 했다. 오랫동안 근무하던 회사를 자의반 타의반 그만두고 나니, 한 직장에 쉽게 정착하기가 어려웠다. 여러 가지 조건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자주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이번에는 마음에 드는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문제는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올라오려니 집값이 너무 비싸서 몇 년간은 기러기 아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지만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주말에 집에 내려가면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간다. 마치 회사에서 주간업무 회의를 하듯 아이들도 일주일간 일어났던 소소한 일들을 이야기 한다. 서로 먼저 이야기 하려고 아우성이다. 누구 이야기를 먼저 들어 주어야 할지 고민스럽다. 딸들의 이야기가 끝나면 아내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세 시간 정도는 금세 지나간다.

 

  이야기가 대충 끝나면 아내는 세탁물을 정리한다. 가방 가득 가져온 빨래를 꺼내서 세탁을 한다. 세탁이 끝나면 말려서 다시 가방 한 가득 채워 넣는다. 가방에는 일주일치 입을 옷들과 부식이 담겨진다. 못 먹고 다닐까봐 여러 가지 반찬을 챙겨 넣는다.

 

  다음은 아내와 쇼핑도 해야 한다. 무게가 나가는 생필품들은 자동차를 이용해서 쇼핑을 해야 한다. 오랜만에 만난 딸들은 기회다 싶어 이것저것 사달라고 보챈다. 아빠와 떨어져 있으니 내가 쉽게 거절을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딸들의 요구대로 이것저것 쇼핑카트에 담으면 아내의 눈초리가 올라간다. 물건 하나 넣을 때마다 아내의 눈치를 보며, 한 번씩 미안한 미소를 건넨다. 그러면 아내도 그냥 눈감아 준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아내는 다시 한 번 가방을 점검한다. 빠진 물건이 없는지 살피는 것이다. 가방을 챙기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쓸쓸함을 느낀다. 솔직히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고생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가방을 들고 자동차에 오른다. 깜깜한 밤중에 운전을 하면서 직장이 있는 수도권으로 향한다. 일요일 오후 수도권으로 향하는 길은 차들이 많다. 밀리는 차량 행렬에 가세하여 수도권을 향해 달린다. 운전을 하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쓸쓸한 생각이 가장 많이 든다. 아직 초보 기러기 아빠라서 그런 것이다. 이 생활도 차차 익숙해질 것이다. 한동안 지나면 가족들도 나도 서로 적응할 것이다. 숙소에 도착해서 아내에게 잘 왔다고 전화를 하면 가족과 함께 보낸 금쪽같은 주말이 마무리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