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시 이야기

내가 당구를 배우지 못한 건 가난 때문이었다.

행복한 까시 2009. 12. 24. 06:54

 회사동료들과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모두 집에 들어가기가 서운한 눈치다. 무엇을 할까 잠시 고민하더니 당구를 치자고 한다. 당구 이야기만 나오면 쥐구멍으로 숨고 싶다. 당구를 전혀 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하는 것을 하지 못할 때가 가장 괴로운 것이다.

 

 사람들이란 하찮은 것 가지고 과시를 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술을 잘 마신다든지, 아니면 골프를 잘 친다든지, 당구, 탁구, 농구, 족구 등을 잘한다는 것을 은근히 들어내며 과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것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은근히 기가 죽는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니 당구장에 갈 일이 많이 생겼다. 사람들은 당구를 못 치는 나에게 한마디씩 던진다.

 "학교에 다닐 때 공부만 했나 봐요"

 "어쩐지 학구파 같이 생겼네요. 학구파들은 당구하고 담쌓고 살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하지만 표현도 못하고 말을 받아친다.

"그래요, 학교 다닐 때 공부만 했어요."

 

 사실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 한 것도 아니다. 가난한 시골에서 서울로 유학을 갔으니 돈이 넉넉할 리가 없었다. 용돈이 항상 부족했다. 용돈이 부족하니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일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도서관에서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잠도 많이 잤다. 도서관에서 잠을 잘 자서 친구들이 숙박료 내라고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설령 용돈이 남았어도 당구를 칠 수가 없었다. 시골에서 피땀 흘려 힘들게 농사짓는 부모님이 주신 용돈을 함부로 쓸 수가 없었다. 이런 마음 때문에 당구를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가끔 당구를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도 양심에는 떳떳하다. 당구를 잘 치지 못해 사람들 앞에 주눅이 들긴 하지만 대학 때 당구를 치지 않을 것을 잘 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당구를 배우지 못했어도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부모님은 힘든 가운데서도 대학을 보내 주셨다. 대학을 보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기만 하다. 나는 당구를 배우지 못했다고 투정하지만 부모님은 더 알뜰하게 생활하셔서 나의 학비를 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당구를 배우지 않은 것이 아주 잘한 선택인 것이다.  

 

 당구를 잘 치지 못하니 겜돌이(점수 계산하는 사람)의 역할만 주어진다. 겜돌이를 하면서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자존심이 무척 상한다. 남들은 멋지게 당구를 치는데, 뒤에서 구경만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당구를 치면 슬그머니 빠져나와 집으로 향한 적이 많았다.

 

 어제는 당구를 쳐 보았다. 사람들이 칠 기회를 준 것이다. 처음 쳐보니 나름대로 재미있다. 이래서 사람들이 당구에 빠지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당구도 배워야 할 것 같다. 당구장에 가면 꽁무니를 빼는 대신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당구를 쳐 보고 싶다. 그 동안의 당구에 대한 굴욕을 만회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