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시 이야기

결혼 후 변해가는 한 남자의 모습

행복한 까시 2010. 3. 8. 17:41

 지난 주말에는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아버지 생신이라 아버지가 낳은 자식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결혼 한 조카도 아기를 데리고 왔다. 아기가 있으니 분위기가 좋다. 모두 아기를 보며 즐거워 하고 웃음 꽃이 핀다. 재롱을 피우며 이방 저 방으로 왔다 갔다 하는 조카의 아기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결혼 전과 결혼 후 내 자신이 많이 변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아이들에 대하여


 결혼 전 아이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도 아이를 낳기 전까지 그랬다. 오죽하면 아내는 이런 생각까지 했다고 했다. 이 사람이 아이들 낳으면 예뻐 할까하며 의심을 했다고 한다. 결혼 전에는 오직 형과 누나들의 자식인 조카들만 눈에 들어 왔다. 조카들만 귀여워하고, 다른 이이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결혼 후 아이들을 낳아 키우다 보니 이제는 아이들만 보아도 예쁘다. 보기만 해도 안아주고 싶고, 깨물어 주고 싶다. 동생이 낳은 조카도 예쁘고, 처제가 낳은 조카도 예쁘다. 나에게 오지 않으려는 조카들에게 갖은 아부를 하며 나에게 오게 한다. 조카들도 자기를 예뻐하는지 알기 때문에 조금만 관심을 주면 나에게 와서 안긴다. 아이들은 말을 못해도 눈치는 구단이다. 자기를 예뻐하는지 미워하는지 금세 알아챈다. 잘해주다가도 조금만 눈빛이 좋지 않으면 그냥 달아나 버린다. 그리고 아이들 이야기에 민감하다. 아이들이 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들으면 마치 내일인 것처럼 가슴이 아프다. 그런 뉴스를 접하면 나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그리고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말을 쏟아낸다. 그리고 사회에 대한 원망도 해 본다. 아마도 아이들을 키운다는 동질의식이나 연대감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 생각에 대하여


 결혼 전 부모님에 대해서는 불만이 가득했다. 늘 아끼고 절약하시는 모습이 싫었다. 쌀 한 톨이라도 아끼시려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도 싫었다. 그리고 시장에 다녀오시면서 점심도 드시지 않고 오시는 어머니를 보며 짜증을 부리기도 하였다. 사소한 일을 가지고도 역정을 내시는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하였다. 늘 일밖에 모르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속상하기도 하고, 안쓰럽다는 생각에 부모님께 투정도 많이 부렸다. 그리고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했냐고 원망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다 보니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난다. 부모님이 하시던 행동 하나하나가 이해가 가고 공감이 간다. 부모님들이 우리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 부모님이 어렸을 때 그토록 지독하게 절약을 하시며 살았는지 자식을 키우면서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야속하리만큼 야단을 치셨던 이유도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다. 아직도 부모님이 우리들을 생각하시는 것을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도 따라가지 못하지만, 그래도 조금 이나마 부모님을 이해하고 생각하게 된 것도 아이들을 낳고 키우다 보니 깨닫게 된 것이다.

 

 

  #쓸데없는 자존심에 대하여


 결혼 전에는 물건을 들고 다니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였다. 어머니가 누나네 집에 먹거리 좀 날라다 주라고 하면 심통부터 내고 잘 갖다 주지 않았다. 그래서 누나에게 미움을 많이 받았다. 그 뿐만 아니다. 누구에게 무언가를 달라고 요청하기도 싫어했고, 길을 물러보는 것조차 싫어했다. 지금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고향집에 가서 먹을거리도 더 많이 챙기려고 하고, 마트에 가서도 아이들이 먹고 싶다고 하면 시식 코너에 가서 더 달라고 요청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서는 총각 때의 쑥스러움이라든가 창피함은 모두 버린 사람처럼 행동하게 된다.


 어제 누나와 마트에 가서 쇼핑을 할 일이 있었다. 쇼핑 봉투를 잊어버리고 가져가지 못했다. 채소코너에 있는 1회용 봉투를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나오니 누나가 웃으면서 한마디를 한다.

  “ 너 참 많이 변했다.”

  “ 그렇게 물건도 안가지고 다니고, 그렇게 고상하게 굴더니 그 모습이 다 어디로 갔냐?”

  “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아보니 예전 누나가 하던 행동이 이해가 가지?”

하면서 과거의 내 행동을 가지고 공격성 발언을 한다. 누나의 이야기가 맞는 이야기라 아무 말도 못하고 머리만 긁적이고 있다.

  “ 나도 결혼해서 살아 보니 별수가 없네.”

  “ 사는 것이 다 그런가봐. 누나.”

하면서 쑥스러워 하며 한바탕 웃었다.


 결혼 후 내 모습이 변하긴 변했나 보다. 아마도 처음에는 조금씩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날마다 조금씩 변한 내 모습이 10년 이상 쌓이니 결혼 전과 아주 다르게 변해버린 것이다. 결혼 전 고상하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보통의 아저씨들과 같이 변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가 싫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 변화는 당연한 것이고, 인생의 성숙한 모습이라고 마음속으로 위안을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