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노인병원은 현대판 고려장

행복한 까시 2010. 11. 17. 06:42

 어제 아침 아내로부터 부고 문자를 받았다.

'큰골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문자를 받고 나니 갑자기 슬픔이 밀려온다. 이승에서의 삶이 끝났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보고 싶어도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안타까움이 더 해간다. 노환으로 돌아가셨지만 조금 더 사셨으면 하는 것이 부질없는 인간의 욕심인 것이다.   

 

 할머니의 부고에 슬픔이 더했던 것은 우리집과 관련된 여러가지 일 때문이었다. 그 할머니는 어린시절 우리 할머니에게도 참 잘했다. 맛난 것이 생기면 우리집 할머니에게 먼저 가져다 주셨다. 맛난 것을 가져 온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마음 씀씀이가 더 고마웠던 것이다. 어머니에게도 잘했다. 몸이 약한 어머니가 힘든 일을 할 때면 언제나 와서 힘든 일을 거들어 주셨다. 어머니는 이런 일 때문에 항상 큰골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갖고 있었다.

 

 할머니는 지난 여름부터 노인 병원에 계셨다. 그리 큰 병이 아닌데, 자식들이 노인 병원으로 모신 것이다. 할머니는 아들이 네명 딸도 세명을 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아마 그집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 아들과 딸을 탓하고 싶지도 않고, 탓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사회문제로 된지는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산업사회로 들어오면서 발생된 문제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싶어도 아내의 눈치때문에 모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남편의 눈치 때문에 모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치매등 지병이 있으면 모시기가 더 힘든 것이다.

 

 이런 소비자의 요구에 의해 생겨난 것이 노인 병원이다. 지병이 있거나 거동하기 불편한 노인들이 병원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본인의 필요에 의해 오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자식들이 모시기 싫어서 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간병인이 있어 간병도 하고, 병원에서 제공하는 의료혜택을 받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노인들의 외로움과 병원에서의 쓸쓸함은 채워 줄 수 없을 것이다.       

 

 며칠전 어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야, 큰골 할머니 오래 못 사시겠다. 노인병원은 고려장이다. 집에서 모셨으면 더 오래 사실텐데...."

하시며 아쉬움을 나타내었다.

 과거 시어머니를 모시던 어머니는 노인들을 병원으로 보내는 것이 내심 못마땅하게 생각하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요즘 세태에 대해 이해를 하신다. 자식들이 고생하거나 힘들까봐 병원으로 가는 부모들도 있을 것이다.

 

 노인들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 방법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노인들도 만족스럽고, 자식들도 만족스러운 속 시원하고 명쾌한 해결책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이 마음이 더 어둡다.

 

 고려장에 대한 일화가 생각난다. 부모님을 고려장에 모시고, 지게를 버리고 오려고 하자 어린아들이 지게를 가지고 가자고 하였다고 한다. 왜 지게를 가져가느냐고 아들에게 물으니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아버지도 이 지게로 모셔와야 하쟎아요."

 

 우리들도 노인이 되면 노인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다. 병원에서 쓸쓸한 노후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경제력이라도 있으면 좋은 시설에서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병원에 들어갈 수도 없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병원은 더 늘어날 것 같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병원 수요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에는 문상을 갈 것이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드려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