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연말, TV속은 화려하지만 바깥 세상은 초라하다.

행복한 까시 2010. 12. 27. 15:23

 

 

 연말이 바짝 앞으로 다가온 것 같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방송에서 들려나오는 캐롤 소리들, 산타크로스 복장을 하고 나와서 즐겁게 놀며 잡담하는 연예프로그램이 텔레비전을 장식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텔레비전에는 저녁마다 각종 부문의 시상식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화려한 시상 프로그램을 보면서 항상 초라해진 나를 발견하는 것이 연말 풍경이기도 했다. 나도 나중에 유명해져서 저렇게 스포트라이트를 한번 받아보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매년 연말이 되면 초라하고 공허한 마음을 수년간 되풀이하면서 간직해 오고 있다.


 아주 어렸을 때는 나름대로 연말이 기다려졌다.

대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겨울 방학을 시작하였다. 추위를 아주 싫어한 나는 추운 날에 학교에 가지 않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했다. 그 때는 왜 이리 추웠는지 학교에 가면 발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이불을 쓰고 누워있을 때의 온돌의 따스한 기운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방학 때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그 여유로움이 우리를 즐겁게 했다.


 사실 텔레비전이 등장하기 전에는 연말이 뭔지 모르고 자랐다.

크리스마스가 뭔지도 모르고 자랐다. 텔레비전이 등장하고 나서는 연말이면 화려한 쇼들, 드라마에서는 선물들을 주고받는 장면들이 많이 나왔다. 특히 아이들을 위해서 크리스마스트리도 만들어 주고, 파티도 열어주고, 선물도 주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 텔레비전을 보면서 원인 모를 소외감, 초라한 우리 집, 상대적 빈곤감을 많이 느꼈다. 그러면서 나중에 아이들 낳으면 나도 꼭 멋진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어주마 다짐했건만 실제로 아이들에게 그때 생각한 것만큼 해주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기에는 연말에는 텔레비전에 심취해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별다른 오락이 없는지라 텔레비전의 가요프로그램은 훤히 꿰고 있었다. 당시 유행하는 가수들, 노래제목, 그 당시 유행하는 노래는 모두 알고 있었다. 얼마나 들었으면 전주만 나와도 모든 노래를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연말이 되면 매일 밤 벌어지는 시상식을 꼭 보았다. 연기 대상, 가요대상, 코미디 대상을 모두 섭렵했다. 보면서 누가 일등을 할 것인가 형제들끼리 내기도 걸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서로 본인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응원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연예인 이름도 잘 모르고 산다. 어떤 때는 노래제목인지 가수이름인지도 헷갈릴 때도 있다. 내가 아는 노래는 아주 유명한 노래나 겨우 아는 수준이다.


 그래도 회사에 처음 취직했을 때는 연말이 좀 화려했다.

연말에는 보너스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말이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다. 돈을 받는 다는 것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마찬가지로 좋은 것 같다. 받은 보너스로 옷도 사 입고, 동생 용돈도 주고, 부모님 선물도 사드리고 나서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 때의 연말이 가장 화려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연봉제로 바뀌고 나서는 연말에 보너스가 사라졌다. 물론 실적이 좋으면 보너스를 받을 수 있겠지만 매년 실적이 좋지 않아 연말 보너스를 언제 받았는지도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갈수록 연말이 초라해지는 느낌이다. 연말에 업무 실적을 뽑아봐야 늘 적자 난다는 이야기, 자금이 돌지 않는다는 이야기뿐이다.


 이제 셀러리맨들에게 연말은 고통이 되었다.

 회사가 잘 나가면 잘 나가는 대로 못 나가면 못 나가는 대로 걱정이 많을 것 같다. 잘 나가면 더 잘나가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고, 못 나가면 언제까지 회사가 버틸 것인가를 걱정해야 한다. 요즘은 내년을 기약하기도 예측하기도 어렵다. 시장 환경도 빨리 변하고, 경쟁자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노후는 노후대로 걱정이 된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늘 고민이다. 그러다 보니 머리만 아프다.


 크리스마스 덕분에 이틀을 푹 쉬었다.

아무 생각 없이 쉬었다. 예전에는 휴식을 취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즐거웠지만 지금은 쉬면서도 쉬는 것이 아니다. 어느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글귀처럼 웃어도 웃는 게 아니고, 울어도 우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겉은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우는 것 같고, 겉은 울고 있어도 속은 웃는 것 같다. 또한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한 꺼풀 벗겨내면 온통 상처와 멍투성이 인 것 같다.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하다 보니 이틀이란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그래도 푸념만 할 게 아니라 연말을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힘차게 출발하자고 마음의 각오를 다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