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80년대 대학생들이 시위를 많이 했던 이유

행복한 까시 2011. 5. 18. 08:48

 5월 18일이다.

참 가슴 아픈 날이다. 이 날이 오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아마도 대학생 시절의 그 기억들이 또렷이 남아서 그럴 것이다. 5.18에 대한 역사의 진실을 알고 받은 충격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그 충격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그 울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시골은 아무 정보도 들을 수가 없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뉴스가 전부이다. 그 당시 대부분의 시골 사람들은 방송에서 나오는 뉴스가 올바른 정보라고 절대적으로 믿었다. 방송국에서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방송에서 보도한 내용을 그대로 믿었다.

그래서 광주에서 일어난 5.18 민주화 운동은 빨갱이의 짓이며, 내란 음모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른들과 함께 광주 사람들을 비난했다. 방송에서 그렇게 보도하니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었다. 죄 없는 무수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는데도, 정치권과 언론은 그 희생을 정치논리로 정당화시켰다. 5.18 민주화 운동이 끝난 몇 년 뒤에도 나는 방송에서 나온 그대로 믿고 있었다. 


 80년대 중반 대학에 들어갔다.

5월이 되었다. 교내 5.18 추모 물결로 넘쳐났다. 전대통령을 비난하는 대자보가 여기저기 나붙었다. 화형식도 거행되고, 5.18 추모제도 진행되었다. 신입생 때 그런 광경은 충격이었다. 시골에서 올라간 순진한 청년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 왔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내란음모라고 알고 있었는데, 추모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5.18 민주화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선배들에게서 듣고, 서적을 찾아보고, 교내에 전시된 사진 자료를 보고 조금이나마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 진실을 알고 나니 분통이 터졌다. 순진하게 믿었던 정치치권과 언론이 진실을 왜곡한 것이다. 믿었던 사람들에 대한 실망이 너무도 컸다. 그래서 우리들은 거리로 뛰쳐나갔다. 정치권과 언론에 대한 불신감이 학생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던 것이다.


 4년의 대학 생활 내내 데모가 끊이질 않았다.

고향의 부모님은 늘 걱정이었다. 뉴스만 틀면 시위 현장이 나왔으니 말이다. 고향집에 가면 부모님이 가장 먼저 하는 말씀이 이것이었다.

 “절대 데모에 가담하지 마라.”

그래도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고 시위에 가담했다.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속고 살아온 것이 억울했고, 죄 없는 광주 시민을 학살한 것에 대한 분노가 너무도 컸다. 그것뿐이 아니다. 그렇게 나쁜 짓을 하고도 언론을 통해서 광주 사람들이 잘못했다고 보도한 것이 더 분통을 터지게 했다.


 80년대 시위가 심했던 것은 이런 이유이다.

학생들은 진실을 왜곡했다는 것에 더 분노 했다. 그리고 광주의 희생을 통해 정권을 잡은 5공화국에 대한 분노가 컸던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같이 아무 것도 모른 체 대학에 들어갔던 사람들의 분노가 시위를 더욱 격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학 정문 앞에 전경들이 항상 상주하고 있어, 그것에 대한 분노도 컸던 것이다.


 오늘은 참 가슴 아픈 날이다.

하루 종일 희생된 분들을 위해 추모하는 마음으로 조용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