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부추를 싸주시려고 고향 길목을 지키시던 어머니

행복한 까시 2011. 8. 6. 07:42

 

 휴가 때 고향에 잠시 다녀왔다.

부모님의 일손을 도와드린다는 명분으로 고향을 찾았다. 막상 가면 제대로 도와드리지도 못한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농사일을 많이 해 보지 못해서 큰 힘은 되지 않는다. 그저 농사일의 보조 정도 밖에 되지 못한다. 몸으로 도와드리는 것 보다 마음으로 도와드린 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은 아들 보는 것으로도 만족해하시니 말이다.


 부모님도 이제는 많이 늙으셨다.

갈 때 마다 더 늙어 보이신다. 점점 걸음걸이가 느려지고 있다. 이제는 걷는 것조차 힘들어  하신다. 어머니는 점점 허리가 굽어지고 있다. 어린시절 동네의 할머니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래도 마음속의 어머니는 항상 젊은 것 같다. 허리가 고부라져 할머니가 되었어도 마음속의 어머니는 젊은 시절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고향을 떠나던 날이었다.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아범아, 부추 좀 가져갈래? 밭에 부추를 심었는데, 아주 많이 자랐다. 부추가 먹고 싶어서  심었는데, 우리는 아주 잘 먹고 있다. 매일 뜯어 먹어도 금방 자라난다.”


 “그냥 놔두세요. 뜯으러 갈 시간 없어요. 안 가져가도 돼요.”

 

사실 갈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갔다 오는 거리였다. 날씨가 더워서 가기가 귀찮았던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말씀을 잊어 버렸다.


 비가 많이 온다는 소리에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하였다.

밭에서 일을 하다가 서둘러 고향집에 와서 떠날 준비를 하였다. 아버지와 형에게는 밭에서 작별 인사를 드렸다. 고향집에 들어오니 어머니는 계시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해야 하는데 계시지 않아 난감했다. 그 순간 아침에 부추가 생각났다. 짐을 챙겨서 부추가 있는 밭으로 가기로 했다.


 짐을 다 챙기자 하늘에서는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어머니 드릴 우산도 하나 챙겼다. 빗방울을 점점 굵어졌다. 어머니는 내 짐작대로 부추가 있는 밭에 계셨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계셨다. 도로에 도착한 내차를 보자 어머니는 막 뛰어 나오셨다. 거기 계시라고 소리를 쳤지만 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 나오셨다. 어머니께 우산을 드리려고 나도 뛰었다.


 비가 많이 와서 우산을 건네 드렸다.

“비 오는데 뭐 하러 나오셨어요? 집에 계시지 않고요.”


“밭에 볼일이 있어 나왔다. 아범아, 부추 가져가라, 아주 실하고 맛나게 생겼다. 아범 주려고 뜯었다.”

 

그때서야 부추가 눈에 들어왔다. 빨간 플라스틱 바가지에 부추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어머니는 밭에 볼일도 없는데 부추 때문에 나오신 것이다. 부추 뜯으러 나왔다고 하면 나에게 말들을까봐 다른 볼일이 있다고 둘러 대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냥 지나갈까봐 길목을 지키려고 하신 것이다. 부추를 다 뜯고 길목을 지키러 가시려고 하는 시간에 내가 밭에 도착한 것이다.


 “차에 담을 데도 없는데 바가지도 가져가거라.”

 

 “아니에요 트렁크에 그냥 담으면 되요.”


  부추를 트렁크에 쏟았다.

그리고 바가지는 어머니에게 드렸다. 부추가 가늘고 부드러워 보였다. 깨끗하게 다듬어진 부추가 트렁크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부추를 싣고 나자 어머니 얼굴이 밝아지셨다. 어머니의 일을 마쳤다는 안도감이었다. 아들에게 부추를 보내려고 아픈 다리를 이끌고 밭에 나오신 것이다. 그 모습에 화가 났지만 참았다. 내가 큰 소리를 치면 어머니가 더 속상해 하실 것 같아 부추를 기분 좋게 받아들었다.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출발했다.

차에 시동을 걸자 어머니는 어서 가라고 손짓을 하셨다. 한참을 가다가 백미러를 보니 어머니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바라보고 계셨다. 아마도 어머니는 차가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계셨을 것이다. 이것이 부모 마음인 것 같다.


 집에 도착해서 아내에게 부추를 내 놓으니 좋아한다.

부추전에 오이소박이를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어머니의 부추 덕에 집안 식탁이 풍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