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팥 시루떡이 그리워지는 어느 날 오후

행복한 까시 2011. 12. 14. 11:52

 

 며칠 전 사촌처남의 결혼식이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아내와 함께 서둘러 결혼식에 참석했다. 요즘은 호텔에서 결혼식을 하는 것이 유행인가 보다. 결혼식은 대부분 호텔에서 화려하게 진행된다. 호텔 조명 때문인지 몰라도 신랑, 신부가 더 멋져 보인다.


 결혼식이 끝나고 점심을 먹었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나니 장모님이 떡 한 봉지를 건넨다. 팥 시루떡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떡이었다. 떡도 맛있었지만 그 시루떡에는 어린 시절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래서 시루떡이 더 맛있는지 모르겠다.


 가을추수가 끝나면 집집마다 시루떡을 했다.

어른들은 그 떡을 고사떡이라고 불렀다. 어머니는 쌀을 커다란 그릇에 불렸다. 한나절 이상 불린 쌀을 디딜방아에 넣고 빻았다. 디딜방아 찧는 소리가 동네에 울려 퍼졌다. 곱게 빻아진 하얀 쌀가루는 너무나 깨끗했다. 꼭 눈처럼 하얀색이었다.


 쌀이 다 빻아지면 어머니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쌀가루를 함지에 담아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오면 잘 씻어진 시루가 준비되어 있었다. 시루아래 베 보자기를 깔았다. 그리고 고구마를 넓적하게 썰어서 시루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미리 만들어 놓은 팥고물을 깔았다. 그 다음에는 쌀가루로 덮었다. 또 그다음에는 팥을 깔았다. 팥 한 번 깔고, 쌀가루 한 번 깔아주면 팥 시루떡이 되는 것이다.  


 커다란 시루를 솥에 올려놓고 증기를 이용해서 떡을 찐다.

떡이 쪄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도 길었다. 빨리 먹고 싶은데, 떡이 그리 빨리 쪄지지는 않았다. 떡이 다 되어갈 무렵 어머니는 싸리나무로 떡을 찔러 보았다. 떡이 다 익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떡이 다 쪄졌다고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사를 지내야 했다. 고사라고 그리 절차가 복잡한 것은 아니다. 떡을 상위에 올려놓고, 정안수 한 그릇을 올린다. 할머니는 우리들에게 절을 하라고 한다. 절이 끝나면 할머니는 두 손 모아 집안의 안녕을 빈다.


 고사의 의식이 끝나면 할머니는 떡을 접시에 담아 장독대, 광(다용도실), 부엌 등지에 놔둔다. 그곳의 신들에게 바치는 의식이다. 그다음은 우리들이 동네에 떡을 돌려야 한다. 20가구 정도 되는 마을에 모두 떡을 돌린다. 형제들이 몇 가구씩 분담해서 떡을 돌렸다. 그 당시는 그것이 귀찮고 싫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따스한 풍경이었다.


 떡을 다 돌리고 나서야 떡을 맛볼 수 있다.

물론 떡이 먹고 싶어 어머니가 떡을 써는 중간에 집어다 먹기도 하였다. 그래도 제대로 편안하게 앉아서 떡을 먹는 순간은 모든 의식이 끝나고 나서였다. 새하얀 쌀가루에 아래위로 맛있는 팥고물이 묻혀져 있는 시루떡이다. 달콤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미각을 자극한다. 팥고물의 맛과 어울려지면 더욱 맛이 있다.


 결혼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떡을 썰어 내 놓는다.

달콤한 맛이 입으로 전해진다. 떡을 먹고 있느니 어릴 적 고사떡 먹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함께 떡을 드시던 할머니도 그립고, 시루떡도 그리워진다. 가끔 시루떡이 먹고 싶으면 시장에 간다. 시루떡을 먹으며 옛 추억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입에서는 미각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고, 머리에서는 추억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