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수필

노루의 죽음을 보면서 생각난 것들

행복한 까시 2015. 7. 8. 07:30

 

 

아침에 출근하다가 노루의 주검을 보았다.

4차선 도로 가장자리에 노루 한 마리가 축 늘어진 채로 누워 있다. 피도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누워 있다. 아마도 자동차에 부딪힌 것 같다. 갑자기 불쌍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조금 운전하고 가다 보니 한 할아버지가 자루를 들고 지나간다. 아마도 쓰러진 노루를 가지러 가는 모양이다. 노루의 죽음이 인간들에게는 하찮은 것이다. 그리고 노루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희열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 할아버지는 노루를 가지고 가서 자랑스럽게 친구들과 소주잔 기울일 것이다.


 인간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도로 때문에 희생된 것이다.

도로 때문에 우리들은 편안한 생활을 한다. 편할 뿐만 아니라 신속하게 이동이 가능 하다. 그런데 이 도로들은 동물에게 지옥이나 마찬가지 이다. 조금만 방심하면 죽음을 부르는 것이다. 동물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사람들에게는 도로가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것이지만 동물들에게 있어 도로는 한낱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


 노루의 주검을 보면서 어머니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머니의 어린시절에 일어났던 일이라고 한다. 외할머니가 이모를 임신 중이었을 때 외할아버지가 노루 한 마리를 잡아 오셨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노루를 잡아온 외할아버지를 싫어하셨다고 했다. 아마도 임신 중에 들짐승을 집에 잡아오는 것이 탐탁하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 노루는 새끼를 밴 노루였다. 이것을 본 외할머니는 더욱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면서 밖으로 나가서 노루를 잡으라고 하셨다. 그러나 외할아버지는 끝내 집에서 노루를 잡으셨다고 한다.


 얼마 후 외할머니가 이모를 낳을 시기가 돌아왔다.

외할머니는 난산 끝에 이모를 낳고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노루 때문이라고 생각하신다. 어머니를 잃었으니 오만가지 생각이 드셨을 것이다. 노루와 인과 관계가 없다고 해도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동물들도 사람들처럼 영혼이 있어 저주를 했을 것이라는 상상도 해 본다. 저주는 못 하더라도 동물들도 영혼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몇 년 전에 나도 비둘기에게 해를 끼친 적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비둘기가 아파트로 날아들었다. 에어컨 실외기에 둥지를 틀려고 시도를 하였다. 아내는 둥지를 못 틀게 방해를 하였다. 집을 지으려고 하면 빗자루로 쓸어 버렸다. 웬만하면 집을 짓게 놔둘 수도 있었다. 그런데 비둘기가 아침부터 울어 대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둥지를 틀면 시끄러워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집을 짓지 못하게 하니 맨 바닥에 알을 낳았다.

알 두개를 낳아서 비둘기가 품고 있었다. 비둘기는 계속해서 아침마다 울어 대었다. 비둘기를 쫒아내기 위해 에어컨 실외기 뒤에 박스를 놓기로 했다. 튼튼하게 생긴 귤 박스를 하나 주워 왔다. 비둘기 알을 조심스럽게 옆으로 옮겨 놓고 박스를 실외기 뒤에 꽂으려고 했다.


 박스를 실외기 위에 올려놓았는데 박스가 옆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 바람에 조심스럽게 옮겨 놓았던 비둘기 알 두 개가 모두 깨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비둘기에게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비둘기 알 만큼은 깨뜨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깨먹은 것이다. 자리를 피했더니 비둘기가 다시 찾아왔다. 찾아와서 계속 그 자리에 있다. 왜 비둘기 알을 깨뜨렸냐고 시위하듯 말이다.


 비둘기 알을 깨뜨리고 나서 하루 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새 생명을 탄생시키려는 비둘기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종족을 번식시키고자 하는 신성한 일을 망치게 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아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매일 계란을 먹고 사는 사람들도 있고, 또 동물의 세계에서는 알을 먹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비둘기 알 깨뜨린 것을 합리화 시켜 보기도 하지만 마음은 불편하기만 하다. 내 집에 찾아온 비둘기를 문전박대 했다는 것에 더 마음이 거슬리는 것 같다.